[횡설수설/고미석]뉴스페이퍼 스탠더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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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이라도 기꺼이 덕을 심고 은혜를 베풀기를 즐기면 벼슬 없는 재상이요, 고위 고관이라도 권력을 탐하고 임금의 총애를 판다면 관직 있는 거지가 된다.’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지난해 한국 사회는 ‘관직 있는 거지’의 실체를 똑똑히 목격했다. 진경준 전 검사장,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등의 현직 시절 의혹과 비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일그러진 검찰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치욕의 해를 보내고 잠잠한가 싶더니 이번에는 ‘돈 봉투 만찬’ 파문이 불거졌다. 법무부와 검찰 간부들이 특수활동비를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식으로 사이좋게 주고받은 것이다. 그제 검찰총장 직무대행인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첫 확대간부회의에서 특수활동비 엄정 관리를 지시하면서 ‘뉴스페이퍼 스탠더드’를 검사들에게 주문했다. 그는 “어떤 행동을 할지 고민될 때 내가 하는 행동이 내일 조간신문에 났을 때 설명이 되고 납득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신문기사로 다뤄진다고 생각해 보라’는 착안점이 신선하다. 신문은 국민을 대신해서 권력의 일탈과 사회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 따라서 행동 기준을 ‘내일자 신문’에 맞춰 보라는 주문은 곧 국민 눈높이와 상식이 기준이란 말과도 같다. 혼자 있을 때도 마음가짐과 행동거지를 반듯하게 하라는 선비들의 전통은 무너진 지 오래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부끄러운 행동을 막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달 22일 서울동부지검장에서 승진한 봉 차장은 우 전 민정수석과 인연이 깊다. 지금은 운명이 엇갈렸으나 둘은 서울대 법대 84학번이자 사법연수원 동기다. 우 전 수석의 날개 없는 추락을 지켜본 그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그제 봉 차장은 “새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둥지를 만든다”며 “국민이 원하는 검찰은 강자에게는 강하되 약자에게는 따듯한 검찰”이라 말했다. 검찰 개혁의 방향은 잘 짚었으나 중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이다. 특히 ‘관행’이란 말이 더는 방패막이가 안 된다는 점을 깨닫길 기대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돈 봉투 만찬#뉴스페이퍼 스탠더드#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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