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9년차 유망주 전민수의 희망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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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도종환 ‘담쟁이’)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1년 프로야구 신인지명회의(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모두 78명. 이 중 22명(28.2%)이 현재 은퇴 상태다. 저마다 프로 선수가 되는 게 평생 꿈이었을 테지만 10명 중 3명은 5년이면 그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만년 2군 선수로 8년을 버티는 건 그래서 기적에 가깝다. kt 전민수(개명 전 전동수·27)가 그랬다. 2008년 데뷔한 현역 타자 가운데 지난해까지 통산 타석 수(22타석)가 가장 적은 선수가 전민수였다. 통산 안타는 제로(0). 진작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은 선수였다. 실제로 전민수는 2013년 넥센에서 방출당했다.

○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연이은 부상이 문제였다. 덕수고 재학 시절 이미 발목에 핀을 박았고 경찰청 제대 후에는 두 차례 어깨 수술을 받았다. 그래도 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소속 팀이 없던 전민수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에게 ‘과외 선생’ 노릇을 하면서 돈을 벌었고, 이를 재활 비용으로 쓰면서 때를 기다렸다.

스스로 돕는 자는 하늘도 돕는 법. 신생팀 kt가 그에게 동아줄을 내밀었다. 2014년 8월 육성선수(옛 연습생)로 kt와 계약한 전민수는 올 4월 16일 7년 만에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전민수는 4월 22일 프로 첫 안타를 신고했고, 지난달 30일에는 첫 홈런도 때렸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전민수가 흔들릴 때마다 손을 내밀어준 사람은 여동생 혁주 씨(21)였다. 현재 서울대 야구부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혁주 씨는 어릴 때부터 오빠를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야구팬이 됐다. 지난해에는 틈날 때마다 kt가 퓨처스리그(2군) 구장으로 쓴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오빠가 타격 폼을 분석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준 것이다.

전민수는 “가장 고맙고 미안한 최고의 팬”이라고 동생을 소개했다. 혁주 씨는 “요즘 TV에 오빠가 나오는 것만 봐도 신기하다. 그저 다치지 말고 오래 즐겁게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결국 그 벽을 넘는다.”


전민수는 데뷔 첫 안타를 친 뒤 “지금 2군에 있는 동료들이 응원해주는 게 느껴진다. 자랑이 되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냉정하게 말해 전민수는 8년 동안 실패한 선수였다. 지금도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2군에 있는 많은 선수에게는 전민수야말로 희망의 증거다. ‘데뷔 9년 차 유망주’ 전민수의 야구는 이제 시작이다.
 
황규인 기자 페이스북 fb.com/bigkini
#kt전민수#2군 선수#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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