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입법 마비’ 놓고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서로 탓할 때인가

동아일보 입력 2015-12-17 00:00수정 2015-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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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국회의장이 어제 “현행 국회법상 일반 쟁점법안들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방법이 없다”며 청와대가 전날 현기환 정무수석비서관을 통해 요구한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경제활성화법의 직권상정을 거부했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상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할 수 있는 요건은 여야 대표가 합의한 경우와 천재지변, 전시·사변 기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85조)로 한정돼 있다. 현재 야당이 법안 처리에 반대해 심의조차 거부하는 ‘입법 마비’ 상태임에도 이를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국회의장으로서 국회법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정 의장의 말은 원론적으로 옳다. 더욱이 2012년 정의화 당시 국회부의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히 제한한 국회선진화법 통과를 주도한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이다. 정 의장은 원유철 원내대표 등이 ‘직권상정 요구 결의안’을 갖고 와 압박하자 이 사실을 상기시키며 5분 만에 집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박 대통령은 어제도 “(국회는) 미래세대에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지금이라도 실행을 해야 한다”며 국회를 압박했다. 언제 닥칠지 모를 경제위기에 대비하려면 노동개혁과 경제 관련 쟁점 법안 통과가 시급하다는 발언에 공감하지만 대통령의 설득 리더십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국무회의는 지시만 있고 소통이 결여된 어전(御前)회의라는 말이 나온다.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하거나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 생각을 왜 못하는가. 야당의 내분 때문에 어렵다면 긴급 기자회견이나 대국민담화의 자리를 마련해 여론을 확산시켜 국회를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 의장은 현 정무수석이 “선거구 획정만 직권상정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라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아주 저속하고 합당하지 않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 의장이 국회선진화법을 이유로 시급을 다투는 쟁점 법안들의 처리에 미온적인 것도 문제다. 의장으로서 여야 협상을 압박하며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서로 비판에만 열을 올리며 충돌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장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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