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마녀사냥 광풍은 왜 반복되는걸까?

김준일기자 입력 2015-10-13 03:00수정 2015-10-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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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악마의 존재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을 굴종시키려 고안되고 사용된 무기로써 필요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시련(아서 밀러·민음사·2012) 》

이야기는 벌거벗은 마을 소녀들이 악령을 부르는 의식을 치르는 데서 시작한다. 소녀들의 아버지이자 삼촌인 새뮤얼 패리스 교수목사가 이를 우연히 목격한다. 17세기 말 영국 청교도들의 식민지인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 마을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하다 들킨 것이다. 마녀로 몰릴까 두려웠던 소녀들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환각상태에서 악령이 보인다고 말이다. 소녀들은 오히려 마녀를 색출하기 시작한다. 하녀로 있던 인디언, 입이 험한 비렁뱅이 여인, 하인과 결혼한 노파…. 이 영특한 소녀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 자신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주민들을 마녀로 둔갑시킨다. 평소 주민들로부터 탐욕자라고 욕을 먹던 패리스 목사도 이를 적절히 이용한다. 권위가 필요했던 재판정도 이를 거든다.

그러자 다른 마을 소녀들도 악령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마을 주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마녀로 지목한다. 결국 세일럼의 감옥은 마녀 혐의자로 가득 찬다. 175명이 마녀 혐의자로 몰리고 이 중 20명은 처형된다. 5명은 옥중에서 모진 고문 끝에 죽는다. 선동은 고발의 고리를 만들고 그 고리들은 서로를 옥죄며 마을 전체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이 희곡은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인 아서 밀러가 미국에서 공산주의자 색출이라는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치던 때인 1953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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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동안 수많은 ‘세일럼 마을’이 있어 왔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그리고 군부독재를 겪으면서 수많은 마녀들을 만들었던 비극의 역사를 안고 있다. 민주화와 산업화로 한국이 선진화되면서 그 광풍이 가라앉나 싶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비극의 씨앗이 사회 곳곳에서 다시 움트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와 다른 이들을 배척하고 욕하고 심지어 저주하는 행태를 쉽게 볼 수 있다. 나와 이념이 다른 사람이라면 ‘죽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세일럼의 비극은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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