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독감에서 메르스까지… 전염병 100년 大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전염병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적(敵)이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적이기도 하다.

1831년 인구밀도가 높은 유럽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갔다. 영국 전역에서는 이듬해까지 6만 명 이상이 죽어 나갔다. 이때부터 인류는 전염병을 적으로 규정하고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산업화가 가속화하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전염병의 전파는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최근 100년은 빠른 속도로 의학 기술이 발전했지만 가장 많은 전염병이 창궐한 시기이기도 하다.

14세기 대유행한 페스트(흑사병)부터 2012년 발병해 올해 한국을 덮친 메르스까지…. 인간은 전염병과 끊임없이 사투를 벌여 왔다. 과연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 에볼라 5戰士, 샘플 바이러스에 희생… 감염경로 밝혀내 ▼

독감에서 메르스까지 ―전염병에 맞서 싸운 사람들


셰이크 후마르 칸 박사, 모하메드 풀라 연구원, 앨리스 코보마 간호사, 음발루 포니에 간호사는 2014년 유행했던 에볼라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환자의 혈액을 모으는 일을 도맡았고,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논문이 나오기 직전 사망했다. 유프 
랑어 박사(둘째줄 오른쪽)는 평생 에이즈에 맞서 싸우다 지난해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사이언스·세계건강발달암스테르담연구소(AIGHD) 제공
셰이크 후마르 칸 박사, 모하메드 풀라 연구원, 앨리스 코보마 간호사, 음발루 포니에 간호사는 2014년 유행했던 에볼라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환자의 혈액을 모으는 일을 도맡았고,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논문이 나오기 직전 사망했다. 유프 랑어 박사(둘째줄 오른쪽)는 평생 에이즈에 맞서 싸우다 지난해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사이언스·세계건강발달암스테르담연구소(AIGHD) 제공
“지난해 수많은 아프리카 의료진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맞서다 죽었습니다. 당시 아무도 이들을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한시라도 빨리 막을 수 있었던 건 이들의 희생 덕분이었습니다.”

지난해 에볼라를 취재한 시에라리온 기자 우마르 포파나 씨는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2015 세계과학기자대회’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와 싸우다 희생된 의료진이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8월 25일 기니와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에서 의사와 간호사 등 보건의료 인력 240명 이상이 에볼라에 감염됐고, 이 중 사망자는 120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했다. 이들의 숭고한 죽음 덕분에 당시 유행한 에볼라 바이러스의 정체는 생각보다 매우 일찍 밝혀졌다.

에볼라 정체 밝히기 위해 환자 혈액 채취

에볼라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9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유행 중인 에볼라 바이러스의 염기 서열 정보를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서아프리카에서 빠르게 확산 중인 바이러스가 10년 전쯤 유행한 바이러스에서 분리돼 빠르게 변이를 일으켰다는 내용이었다.

바이러스의 정체를 이처럼 빨리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시에라리온 현지의 의료진과 과학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셰이크 후마르 칸 박사팀은 지난해 5월 시에라리온에서 첫 감염자가 발견된 뒤 에볼라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24일 동안 환자 78명의 혈액 샘플을 모았다. 또 이 혈액 속에 들어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불활성화시켜 미국 케임브리지브로드 연구소로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하지만 혈액 샘플을 모으는 과정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된 연구팀 5명은 결국 사망했다. 이 일을 주도한 칸 박사도 사망자에 포함됐다. 사이언스는 논문 말미에 칸 박사를 비롯해 모하메드 풀라 연구원, 알렉스 모이그보이 연구원과 간호사인 앨리스 코보마, 음발루 포니에를 추도하는 글을 실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비극적인 일입니다. 시에라리온에서 공중보건과 연구 활동에 크게 이바지한 5명의 공저자는 연구 도중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에 감염돼 논문이 출판되기 전에 (에볼라와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넋을 기리고자 합니다.”

에이즈를 만성질환으로 만든 ‘칵테일 요법’

유프 랑어 박사는 20세기 최악의 전염병인 에이즈에 맞서 싸운 전사로 꼽힌다. 1980년대 초 에이즈가 퍼져 나가기 시작할 즈음 레지던트였던 랑어 박사는 에이즈 치료 연구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람의 혈액에서 특정 바이러스의 단백질이 많이 나오는 것이 에이즈 증상 발현의 징후라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다. 이는 단백질이 발현되기 전에 항바이러스제를 이용하면 증상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1990년대 캐나다, 호주 등에서 대규모 임상시험이 진행됐고, 세 가지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칵테일 요법’을 쓰면 에이즈 바이러스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덕분에 에이즈는 완치는 되지 않지만 관리를 잘 하면 수명을 오래 연장할 수 있게 됐다.

랑어 박사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랑어 박사는 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에이즈가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걱정했다. 그는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코카콜라나 맥주를 구할 수 있는 것처럼 (에이즈) 치료제도 구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2001년 비영리단체인 ‘팜액세스재단’을 설립해 지원금을 모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프리카에 의약품을 보급해왔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에이즈 퇴치에 앞장서온 랑어 박사는 지난해 호주 멜버른의 국제 에이즈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호주 퍼스로 가던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미사일에 격추됐고, 랑어 박사를 포함해 탑승자 298명 전원이 사망했다. 당시 여객기에는 랑어 박사 외에도 에이즈 학회 참석차 여러 에이즈 전문가들이 탑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역사적으로 전염병과 싸운 흔적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14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페스트(흑사병)와 지금은 백신이 개발돼 완전히 사라진 천연두도 처음에는 발병 원인을 알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그때마다 본인이 감염될 위험을 무릅쓰고 전염병의 실체 규명에 달려들었고, 결국 이들이 원인 바이러스와 세균을 밝히는 데 성공해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었다. 지금도 전염병의 최전선에는 병원체와 사투를 벌이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현경 uneasy75@donga.com·신선미 동아사이언스 기자
#전염병#독감#메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