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일동맹 격상시킬 아베의 訪美, 한국 외교전략은 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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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6일부터 일주일간 미국을 방문해 미일(美日) 동맹 강화를 위한 전례 없는 움직임에 나선다. 27일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양국 군사동맹을 격상시키는 데 이어 2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을 앞둔 경제동맹을 세계에 과시한다. 29일에는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대에 올라 70년 전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戰犯)국가였던 일본과 승전국 미국이 함께 이끌어갈 미래비전을 역설할 예정이다. 한국이 일본의 과거사 발언에 골몰하는 사이, 아시아는 중국의 급부상에 이어 미일 관계의 밀착으로 전략적 질서가 요동치는 상황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서구적 국제 정치질서가 동양으로 팽창해 오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 일본이 영일(英日) 동맹을 통해 동양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지역 패권을 추구한 반면에 한국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주권을 빼앗긴 역사가 있다. 2차대전에 패한 뒤 미일 동맹으로 경제 발전에 성공한 일본은 이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맞춰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하는 등 세계질서의 변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퇴행적 역사인식 때문에 한국이나 중국에선 비판받는 아베 총리도 세계의 평가는 나쁘지 않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칼럼에서 “워싱턴은 약간의 ‘아베망각증(Abenesia·일본이 전쟁에 대해 충분히 사과하지 않는 것)’을 용인할 준비가 돼 있다”고 썼을 정도다.

그나마 미국 일각에서 아베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다행스럽다. 공화당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25명은 23일 “우리는 아베 총리가 역사를 직시하고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공식적으로 재확인하고 인정할 것을 촉구한다”는 요지의 연명 서한을 주미 일본대사에게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제 브라질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기초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주변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지역과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일본의 변화를 재차 촉구했다. 아베 총리가 이번 방미에서 일본이 저지른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를 끝내 외면한다면, 한미일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기회를 놓쳤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중국조차 강온 양면의 대일(對日) 정책을 번갈아 구사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식민지배라는 아픈 역사를 지닌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에서 과거사 문제를 경시할 수 없고, 일본의 ‘도발’에 정면 대응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정부나 한국 사회가 자칫 이 문제에 너무 매몰돼 지정학적 변화를 외면하고 더 중요한 국익을 놓칠 위험은 없는지 돌아볼 때다. 한국은 지금까지 ‘승자의 연합’에 속한 덕분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지 않도록 한국도 현실주의적 국가전략에 입각해 국익을 확보하는 유연한 사고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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