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경제
분배보다 투자-성장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시급
무리한 평준화 아닌 장단기 과제 구분과 조화 필요
국민의식과 가치관, 지역-계층간 큰편차 극복도 과제
전광우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석좌교수
평균이란 매우 편리한 통계적 대푯값이지만 왜곡될 소지가 큰 개념이다. 발을 담글 수 없는 펄펄 끓는 물과 얼음같이 찬 물을 적당히 섞으면 기분 좋게 목욕하거나 수영할 수 있는 평균수온이 된다. 연못의 깊이가 발목 수준에서 2m까지 차이가 크더라도 ‘평균수심이 1m 남짓이니까 1.5m 평균 신장의 학생들에게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오류의 심각성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평균의 오류는 편차가 클수록 위험해진다.
‘피케티 신드롬’이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심화를 지적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최근 저서 ‘21세기 자본론’ 얘기다. 방대한 실증자료 분석을 토대로 ‘자본수익률이 소득증가율을 초과하기 때문에 빈부격차 확대는 필연적이며 부의 세습은 소득편차를 더욱 고착시킨다’는 결론이다. 세계적 석학과 언론까지 가세하면서 보수 진보 성향에 따라 해석과 해법에 대한 공방이 거세다. 통계가 조작됐다거나, 글로벌 부유세 도입 등 그가 제시한 해결책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가을 출간 예정인 한글번역판은 열풍을 예고한다. 재벌체제를 품은 한국경제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세습자본주의의 폐해를 강조한 이 책자의 파장은 작지 않을 것 같다.
성장과 분배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고 자유시장경제의 진화 필요성에 대한 경고음도 커졌다. 금년 초 다보스포럼 주제도 양극화가 이슈였고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 국제기구들이 불평등 악화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다투어 보냈다. 지난달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4 한국경제 보고서’도 소득 불균형과 상대적 빈곤의 심화를 지적하고 있다.
양극화 해소는 시대적 과제다. 불균형의 개선 없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재점화할 시기가 아니다. 기업투자와 성장촉진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없이는 복지 확대나 부의 효율적 배분이 불가능하다. 무리한 평준화가 답이 아니고, 시급한 단기과제와 지속 실천해야 할 장기과제를 구분하고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가 먼저 원기를 회복해야 수술도 하고 체력 강화도 할 수 있듯이 급성질환과 만성질환을 동시에 치유하려면 투 트랙 처방이 효과적이다.
경기 회복이 급선무다. 저성장의 고착화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혁신 드라이브가 필요하다. 추진력은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에 달려 있는 만큼 일관된 정책과 합리적 규제환경 조성이 관건이다. 지나친 단기부양이 아니라 잠재성장력 제고가 정도(正道)다. 수출 증가세 둔화와 세월호 참사 여파로 인한 내수 침체로 금년도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고 있다. 재정통화 수단을 총동원한 주요 선진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의 경제 살리기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신흥국 불안과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도 대외위협 요인이다. 무기력한 국내 경제의 반전 모멘텀이 절실한 시점이다. 특히 위축된 금융산업을 살려야 경제의 역동성 회복을 앞당길 수 있다.
경제사회적 편차를 줄이는 노력은 긴 안목으로 실행해야 한다. 이달부터 시행되는 기초연금제는 노후소득 보장 강화의 새로운 축으로서 의미가 크지만 사회안전망의 핵심인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노인빈곤 문제와 소득재분배 효과의 근본적인 개선은 조세나 연금개혁과 같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므로 의견 수렴을 통한 추진이 바람직하다.
개인소득이나 기업 실적의 부익부 빈익빈 심화라는 경제적 양극화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식과 가치관의 양극화다. 6·4지방선거 결과는 절묘한 균형이라는 종합평가를 받았지만 양호한 평균치 뒤에는 세대, 계층, 지역 간 표심의 큰 편차라는 그림자가 있다. 최근 총리후보자의 여론 검증 과정에서 표출된 극심한 정서적 쏠림 현상과 도를 넘는 막말이나 괴담은 사회 갈등과 국론 분열을 증폭시키고 국정 공백을 야기하고 있다.
양극화 극복은 포용적 국가리더십을 요구한다.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은 품격 있는 선진사회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표현처럼 상호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 없이는 밝은 국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거창한 국가개조도 기본적인 의식개조가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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