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소년 행세 컴퓨터의 말…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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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 애완동물이 더럽다고 친구 생일날 선물로 줘버리래”
인공지능 ‘유진’ 5분간 대화… 심사위원 33% “인간으로 착각”
64년만에 ‘튜링 테스트’ 첫 통과

“엄마는 내 애완동물인 기니피그를 항상 ‘더러운 돼지’라고 불러. 그리고 내 친구의 생일에 선물로 줘 버리라고 소리를 지르지.”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다는 13세 소년 유진 구스트만.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 취미로 기니피그를 기르는 그는 엄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순간 심사위원들은 유진을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AI)’으로 인정했다.

8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스 등에 따르면 영국 레딩대와 유럽연합(EU)이 지원하는 로봇기술 연구기관인 ‘로보로’가 개최한 ‘튜링 테스트 2014’에서 유진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AI는 5분 길이의 텍스트 대화 테스트를 통과했다. 튜링 테스트는 영국의 전산학자 앨런 튜링이 1950년대에 제안한 AI 판정 테스트로 기계가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화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기계의 사고능력을 판별한다.

이날 테스트에서 유진은 심사위원 중 33%에게 엄마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아 ‘진짜 인간’이라는 확신을 줘 AI 판정 테스트가 시작된 지 64년 만에 문턱을 넘어섰다. 이 테스트를 주관한 케빈 워릭 교수는 “대화에 앞서 미리 질문이나 화제를 정해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튜링 테스트가 이뤄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러시아의 프로그래머 블라디미르 베셀로프 등이 개발한 유진의 첫 버전은 200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선보였다. 유진이라는 캐릭터를 13세로 설정한 것도 이번 테스트를 통과하는 데 한몫했다. 베셀로프 씨는 “유진의 나이 때문에 사람들은 유진이 모르는 것이 있더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부 실수하는 보통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유진을 두고 사람을 속일 수 있는 컴퓨터가 등장했다는 우려와 기술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워릭 교수는 “튜링 테스트를 처음으로 통과한 컴퓨터가 AI 분야의 이정표를 세웠지만 사이버 범죄에도 경종을 울리는 일”이라고 인디펜던스에서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진짜로 생각하는 능력을 지닌 컴퓨터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의 13세 소년으로 가정하고 문장을 만들어 질문에 적절히 반응할 것일 뿐이며 ‘기계가 생각을 한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라는 것이다.

김지영 kimjy@donga.com·정세진 기자
#인공지능#우크라이나#기니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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