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유병언 패밀리’ 비호 세력 누군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1997년 8월 유병언 회장의 세모그룹이 부도를 냈다. 16억 원의 어음 결제자금이 없다던 유병언 일가(一家)는 1년 7개월 뒤인 1999년 3월 청해진해운을 세웠다. 어떤 묘수를 부렸는지 3000억 원의 금융권 부채 중 2000억 원을 탕감받았다. 인천∼제주 노선 같은 주요 항로 여객선 운항권을 따낸 뒤에는 무리한 증축과 화물 과적(過積)을 일삼았다.

세월호 참사의 주범(主犯)은 돈에 눈이 멀어 안전 관련 법규를 내팽개치고 선박을 시한폭탄으로 만든 청해진해운이다. 자기 살기에만 바빴던 선장과 선원들의 한심한 행태도 그런 토양에서 생겼다. ‘유병언 패밀리’는 경영과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그들이 실제 소유주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확보했다.

정부의 안전관리 소홀과 초기대응 혼선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사고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사과한 것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당연한 자세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의 가장 큰 책임이 청해진해운과 실소유주인 유병언 일가 아닌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고 일각에서 몰아붙이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궤변이다. 이런 식의 논리 비약이라면 미국 9·11테러의 주범은 오사마 빈라덴이 아니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야 하나.

유병언 패밀리가 부도 후 2년도 안 돼 재기하고 수천억 원대의 자산가로 급성장한 비결은 뭘까. 정치권 관료 금융계 등 곳곳에 포진한 비호 세력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본다. 세모 출신의 이용욱 전 해경 정보수사국장이나 청해진해운 계열사 대표로 옮겨간 채규정 전 전북부지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강경 좌파세력은 연일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고 심지어 정권 퇴진까지 주장한다. 그들의 ‘비판할 권리’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간접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그렇게 성토하면서 정작 직접 책임자인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패밀리 문제엔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무는 행태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2009년 유병언에게 환멸을 느껴 그를 떠난 수행비서 출신 이청 씨는 최근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목할 만한 폭로를 했다. “유병언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한 수뇌부에 측근을 파견해 깊숙이 관여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유병언이 “유모차를 앞장세워라”라고 직접 지시하는 모습도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생명 인권 서민을 내세우는 ‘촛불 좌파’가 천민(賤民) 자본주의에 찌든 부패 기업인을 감싸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이해할 단초는 된다.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그제 “검찰 수사가 유병언 씨 일가에 집중돼 잘못된 초동 대응으로 희생된 승객과 아이들 문제는 다루지 않고 있다”며 “유 씨에 대한 수사는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핵심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 이런 인식은 오해를 부르기 딱 좋다. 그렇지 않아도 유병언 일가가 부채 탕감과 인천∼제주 노선 취항 같은 특혜를 받으며 재기한 시점이 현 야당의 집권 시절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0년대 초반 유일하게 거친 장관직은 ‘해양수산부 마피아’의 온상인 해수부 장관 아니었던가.

유병언과 그 자녀들은 지금도 반성은커녕 국내외 도피와 검찰 소환 불응으로 대한민국을 비웃고 있다. 유병언 패밀리의 각종 불법행위는 물론이고 그들을 싸고 돈 세력들을 성역(聖域)과 정치적 고려 없이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과 관(官)피아 해소, 개각도 필요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무고한 생명들을 차가운 바닷물에 수장(水葬)시킨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일가와 그 비호세력을 척결하는 일이 흐지부지되는 일은 안 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유병언#세모그룹#세월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