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가기 싫어…노예라도 좋다, 제발 키 크게만 해다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4일 20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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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다가온다. 등을 툭 친다. "야, 호빗(소설에 등장하는 난쟁이 종족의 이름)!"
순간 번쩍 눈을 뜬다. 이런 식으로 잠에서 깬 게 일주일새 벌써 2번째. 방학이지만 교실 안에 있는 꿈을 꾼다. 책상에 앉아 있으면 친구들은 매번 "솜털이 보송보송하다"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여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나는 이름이 없다. 대신 호빗으로 불린다. 하루에도 수십 번은 키가 3㎝만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낳아준 엄마를 습관처럼 원망한다. (고1 최모 군)

● 겨울방학, 10대들은 키와 전쟁

162㎝정도 되는 키 때문에 자살충동까지 여러 번 느꼈다는 최 군에게 이번 겨울방학은 특별하다. 키가 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이른바 '키 업(up)' 카페. 작은 키 때문에 고민이 많은 10대들이 회원이다. 온라인에 수시로 대화 창을 열고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한다. 한 달에 한 번 가량 오프라인에서도 모임을 가진다. 10대들이 구입하기에 비싼 키 크는 약이나 초유(初乳) 등을 번갈아 사 나눠 먹는다.

비단 최 군만의 얘기는 아니다. 겨울방학을 맞아 10대들의 키 늘리기 열풍이 뜨겁다.

방학 기간 성장클리닉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서울의 A 성장전문 한방클리닉 원장은 "10대들이 많이 찾는 덕분에 3년 사이 회원이 급증했다"고 귀띔했다. 성장전문 맞춤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B클리닉 상담사는 "몇 년 전만 해도 초등학생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비율이 초등학생 반, 중·고교생 반이다. 초등학생은 주로 부모 손에 이끌려서 오지만 중·고교생은 고민 끝에 직접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성장 전문 트레이너'도 방학 특수를 누린다. 가격은 10회 100만 원가량. 적지 않은 금액임에도 예약이 넘친다는 설명이다.

신발 안에 넣는 '키 높이 깔창'도 불티나게 팔린다. 국내 한 대형인터넷 쇼핑몰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주로 10대들이 이용한다는 깔창 판매량이 3배 이상 늘었다. 이화여대 앞 골목에서 신발 가게를 운영하는 전원태 씨는 "특히 남자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다. 50명 중 40명은 깔창을 깐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 죽고 싶다, 키 때문에

이러한 열풍의 배경에는 10대들의 '키 콤플렉스'가 있다. 이는 본보 취재진이 서울의 H, K고교 학생 377명(남 194, 여 183)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가장 큰 외모 콤플렉스로 62.6%가 '키'를 꼽았다. 그 뒤로 '몸무게'(13.8%), '눈, 코, 입'(9.8%), '얼굴 크기'(8.8%), '기타'(5%) 순.

본인의 키가 불만스럽냐는 질문에는 70%가 '그렇다'고 했다. 키 때문에 부모가 원망스러운 적이 있다는 학생은 26%, 학교에 가기 싫은 적이 있다는 학생도 29.2%였다. 20명 가운데 1명은 키 때문에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했다.

고2 최규식 군은 "키는 생김새, 성격 등과 달리 그 수치가 명확하다. 누가 잘났는지 기준으로 삼기 쉽다"고 했다. 명확한 걸 좋아하는, 소위 요즘 아이들 스타일에 딱 들어맞는 기준이 키라는 설명이다.

키 크고 늘씬한 연예인 등을 닮고 싶은 '워너비 신드룸'도 키에 대한 집착을 부추기는 이유로 꼽혔다. 특히 스마트폰의 보급은 기존 인터넷, 각종 미디어들에 더해 워너비 신드룸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

'몸짱 열풍'이 10대에까지 확산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사실 키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시점은 결혼 적령기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조숙해 고민을 앞당겨 하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김장희 인턴기자 이화여대 국문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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