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인도네시아 제작진이 말하는 한국과 다른 방송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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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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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취향 어디로 튈지 몰라… 열광하다가도 금세 싫증 느껴

수시 와르다니 작가(왼쪽)와 두디 파티라만 PD. 수시 와르다니 작가 제공
수시 와르다니 작가(왼쪽)와 두디 파티라만 PD. 수시 와르다니 작가 제공
고민은 똑같다. “24일 프로그램 평균 점유율(TV를 켜놓은 사람들 중 특정 프로그램을 본 사람의 비율)이 7.6%인데, 마리아가 나왔을 때 점유율이 10.3%네요. 마리아 출연 분량을 늘려야 되나….” 27일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 연습실 앞에서 두디 파티라만 PD(42)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마리아는 여성 출연자들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외모를 지녔다.

그의 양손에 들린 화면 위로 분당 시청률(전체 시청자 중 특정 프로그램을 본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하늘색 막대그래프들이 불규칙하게 솟아 올랐다. 손가락을 갖다 대 화면을 넘기자 왼쪽에는 출연자들의 이름이, 오른쪽에는 소수점 한 자리까지 표시된 숫자들이 위에서 아래로 쭉 다시 펼쳐졌다. 해당 출연자들의 등장 시간과 그때의 시청률, 점유율이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 있는 제작진과 한참 동안 화상 통화로 이야기를 나눈 뒤였다.

“한국과 똑같아요. 시청률이 떨어지면 가슴이 철렁하죠.”

파티라만 PD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스태프 5명은 ‘갤럭시 슈퍼스타’ 촬영을 위해 출연자들과 16일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출연자들과 같은 숙소에 머물며 한국 스태프와 함께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마쳐 인도네시아로 보낸다.

○ 한국은 자막 많고, 많이 찍고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도 많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 스타일의 편집은 자막이 많이 사용되는 것. 인도네시아에서는 자막을 거의 쓰지 않는다. 설명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자막이 아닌 내레이션으로 대신한다. 조금 전에 나왔던 화면이 수시로 다시 삽입되는 것도 다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무리 출연자들이 재치 있는 말을 하거나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도 한 번 지나간 ‘그림’은 다시 잘 넣지 않는다. 한국에서 5분 정도 이어지는 화면들은 인도네시아에서는 3분이면 끝이 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테이프 하나면 충분히 다 찍을 수 있는 내용을 이곳에서는 12개씩 써가며 찍더라고요. 테이프가 너무 많아서 나중에 편집할 때 머리가 아파요.(웃음)”

지난주 일요일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방송된 ‘갤럭시 슈퍼스타’의 평균 시청률은 2.1%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평균 시청률 3∼4%만 나와도 ‘대박’ 프로그램으로 여겨진다. 민영 방송사만 10개에, 국영방송사 하나까지 총 11개의 지상파 방송이 있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목표는 평균 점유율 10% 이상. 사실 인도네시아의 많은 PD들은 이 시간대를 될 수 있으면 피하려 한다. 황금 시간대이지만, 경쟁력이 막강한 다른 프로그램이 이미 꽤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해외 축구리그 중계방송. 시청자의 약 70%가 축구를 본다고 한다.

○ 섹시한 의상은 안 돼

그러나 또 같다. 파티라만 PD 옆에서 함께 시청률 표를 들여다보던 수시 와르다니 작가(40·여)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신데렐라 스토리가 먹히고, 시청자들이 극단적인 상황 설정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인력거인 ‘베착’을 몰던 남자가 거부가 되고, 욕이 저절로 나오는 악녀가 등장해 줘야 한다는 것.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외모보다는 출연자가 지니고 있는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 다만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위기도 적고, 출연자들도 다들 착한 모습만 보여준다. 그는 “그런 부분은 인도네시아의 정서랑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와르다니 작가와 파티라만 PD는 이미 그전에 ‘댄싱 위드 더 스타-인도네시아’ 시즌 2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지난해 MBC에서 동명의 미국·영국 합작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포맷을 구입해 만들었던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도 판권을 사서 만들었다. 이미 짜여 있는 틀대로 찍고, 편집하고, 방송하면 됐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섹시한 의상은 절대 안 됐다. 여성 출연자들이 가슴골을 보여서도 안 되고, 배꼽을 드러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짧은 치마는 무릎 위 한 뼘까지의 길이만 허락되고, 치마 안에도 반드시 속바지를 입어야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스토리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없다. 와르다니 작가는 “한국에 와서는 촬영이 끝난 다음에 스토리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 새로운 것 좋아하고 쏠림 심해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숙소에는 아직 TV가 없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한 뒤로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다. 다만 한국에 오기 얼마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KBS 예능프로그램 ‘해피 선데이-1박2일’을 봐 뒀다. 두 사람은 “인도네시아 프로그램이었다면 ‘양념’을 더 넣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령 저녁에 잠이 들었을 때 얼굴에 낙서를 한다든지, 더러운 행동을 한다든지 하며 출연자들이 망가지는 모습들이 더 들어가 줘야 한다는 말이다.

파티라만 PD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의 음악이나 드라마를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예능이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여전히 일본 쪽 방송을 더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 시청자들은 싫증도 쉽게 느낀다고 한다. 한때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국 드라마는 인도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드라마들이 인기를 얻더니 이제는 한국 드라마들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보통 2시즌을 넘어가면 흥행에 성공하기 어렵다. 그가 제작에 참여했던, 점유율 15%가 넘게 나왔던 오디션 프로그램 ‘맘마미아’도 시즌 3부터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았다. 와르다니 작가는 “시청자들이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O2#방송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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