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1호기의 전력공급 중단사건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강창순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2월 9일 고리원전 1호기의 전력공급 중단 사고는 직원 실수, 관리 소홀, 보고 은폐 등 온갖 부실이 빚어낸 ‘인재(人災)’였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중요시설을 책임진 직원들의 행태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21일 원자력안전위원회(안전위)는 사고 직후 회의를 열어 은폐를 주도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의 문병위 전 제1발전소장 등 핵심 관계자들을 사법기관에 고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안전위는 “안전성을 점검한 뒤 문제가 없으면 고리 1호기를 재가동하겠다”고 밝혀 지은 지 34년 된 고리 1호기의 연장가동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식경제부는 이날 ‘에너지 위기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이달 말까지 원전을 포함한 모든 국가 에너지시설의 안전점검을 위한 ‘민관합동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 원전 관리 총체적 난맥상
안전위 강창순 위원장은 이날 조사현황 브리핑에서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의 전 고리1발전소장과 현장 간부들이 고의적으로 사고 사실을 본사와 안전관리 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안전위에 따르면 2월 9일 오후 8시 34분 작업자 실수로 외부 전원이 차단된 뒤 10초 이내에 자동으로 작동해야 하는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았다. 2대 중 1대는 정비 중이었고 나머지 1대는 공기공급밸브 결함으로 고장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문병위 당시 발전소장은 사고 당시 외부전력이 연결되기 이전인 오후 8시 42분 주제어실에 도착했고 주요 간부들과 논의해 한수원 상부 및 안전위에 보고하지 않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발전팀의 모든 운전원 일지는 물론이고 비상디젤발전기 가동 실패에 관한 내용도 관리대장 기록에서 삭제했다.
이후 2월 10일과 11일 비상디젤발전기 2대가 모두 운전 불가능한 상태에서 핵연료 인출 등 정비를 계속했다. 고리 1호기 운영기술지침서에 따르면 최소 1개의 외부전원과 1대의 비상디젤발전기가 운전 가능한 상태에서 핵연료를 인출해야 하는데 이마저 어긴 것이다.
원자로는 꺼진 상태였지만 전기가 끊긴 12분 동안 원자핵 붕괴 잔열제거 장치가 가동되지 않아 원자로 냉각수는 36.9도에서 58.3도로, 사용후핵연료는 21도에서 21.5도로 상승했다. 하지만 핵연료의 안전성에는 영향이 없었으며 우려한 방사성물질 누출은 없었다고 안전위 측은 설명했다.
안전위는 또 “김종신 한수원 사장이 원전 블랙아웃 사실을 안 것은 이달 11일이 아니라 하루 빠른 10일”이라고 밝혔다. ○ 재발 방지 위해 현장 규제 강화
안전위는 사고가 났던 비상디젤발전기를 내년 3월까지 신품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강 위원장은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공기공급밸브를 교체한 뒤 재가동하겠다”며 “고리 1호기를 폐쇄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안전위는 한수원의 안전문화수준을 진단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안전문화평가(SCART) 검토를 요청할 예정이다. 또 원전 정기검사 항목도 57개에서 100개로 늘리고 전력계통 시험에 대한 원자력안전기술원의 현장 입회율을 50%에서 80%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편 지경부도 대대적인 에너지시설 안전점검에 들어간다. 에너지를 담당하는 지경부 조석 2차관은 21일 관련 회의에서 “내 직을 걸고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내놓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경부는 이달 말까지 에너지시설 안전점검을 위한 민관합동위원회를 출범시킨다. 정부는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대 윤기봉 교수를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 폭을 높일 계획이다. 새로 출범할 위원회는 발전소와 광산, 석유 비축,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민간 가스시설 등의 안전성을 일제히 점검하는 한편 관련 제도 개선작업에도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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