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칼럼]<조벡의 할리우드 in the AD>크리에이터들의 숨겨진 영감의 원천, 케이트 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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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8일 0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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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모스가 등장한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향수 광고.
케이트 모스가 등장한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향수 광고.

평범하게 보이는 한 장의 사진.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사진보다 파워풀한 영향력을 가진 사진이 있다.

10년보다 더 오래전, 나는 뉴욕의 소호(SoHo)와 노호(NoHo)를 나누는 하우스턴(Houston) 스트리트와 라파예트(Lafayette) 스트리트가 교차하는 곳에서 길을 건너려던 중이었다.

신호가 바뀌어도 길을 건너지 않고 한참을 서 있었다. 건너편의 10층 정도 건물 벽면 한쪽 전체를 덮은 거대한 광고 사진을 보느라 그랬다.

아직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듯한 깡마른 소녀 하나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배 쪽을 소파에 대고 누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흑백 광고 사진 한 장이 내게는 그런 파워를 가진 한 장의 사진이었다.

▶캘빈 클라인 광고서 나신으로 등장…사회적 이슈 일으켜

그 사진은 앳된 모습의 모델 케이트 모스(Kate Moss)가 등장한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향수 옵세션(Obsession) 광고 사진이었다.

당시 캘빈 클라인은 섹슈얼한 이미지를 광고 캠페인에 자주 도용하며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구설과 화제를 동시에 만들었다. 이 사진 등장 이후, 어린 소녀의 나신까지 등장시켰다며 미국 학부모 단체들에 크나큰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적 이슈로까지 번졌다.

하지만 내가 그 광고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본 이유는 캘빈 클라인 특유의 섹시한 광고라서가 아니었다. 사진 너머로부터 이쪽을 바라보는 케이트 모스의 시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뭔지 모를 애틋함이 묻어나서였다.

나는 그때 ‘저 사진을 찍은 사람과 저 모델은 분명 사랑하는 사이일 거야’라며 혼자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을 했다.

하지만 그 정도 상상이 다였다. 그때의 나는 훗날 내가 바로 그 건물 벽면을 채우게 될 새로운 캘빈 클라인의 광고를 제작하고, 또 바로 그 사진을 찍은 사람과 함께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저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걱정이자 목표였던 어린 학생일 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 사진을 촬영한 포토그래퍼와 모델 케이트 모스는 나의 예감대로 촬영 당시 연인이었다.

언젠가 그 포토그래퍼인 마리오 소렌티(Mario Sorrenti)에게 당시의 정황을 물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그 사진이 가진 파워는 자신의 역량으로 발현되었다기보다는 케이트 모스라는 모델이기에 가능한, 그녀만의 내재된 힘의 결과였다고 말했다.
케이트 모스와 옛 연인 마리오소렌티의 90년대 모습.
케이트 모스와 옛 연인 마리오소렌티의 90년대 모습.


그도 세계 최고의 사진작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면서 너무 겸손한 발언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케이트 모스와 직접 일을 함께 해보니 마리오소렌트의 말이 겸손만은 아니었구나를 알게 됐다. 그녀는 자신이 임하는 촬영이 어떤 촬영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거기에 맞춰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왜 모두들 그렇게 케이트 모스를 고집하는 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머릿속 이미지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유일한 모델”

연인이었던 마리오소렌티 외에도 많은 유명 포토그래퍼들에게 모델 케이트 모스와의 작업은 그야말로 흥분되고 긴장되는 작업이다.

보그의 커버와 화보 작업을 비롯해 최근 베르사체 광고까지 벌써 수십 번은 케이트 모스와 촬영을 함께 했을 법한 포토그래퍼 마리오 테스티노(Mario Testino)도 그녀와의 작업은 언제나 흥분되고 기다려진다고 말한다.

그녀와 캘빈 클라인 광고를 비롯해 인터뷰 매거진, 프랑스판 보그 등 다년간 다양한 작업을 진행한 포토그래퍼 미카엘 얀손(Mikael Jansson)도 케이트 모스야말로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최상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유일한 모델이라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잘 알려진 사실 중 하나지만 케이트 모스는 키가 그리 크지 않아 런웨이에 적합한 모델은 아니다. 160cm가 안 되는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는 오히려 패션모델에게 있어서는 가장 부적합한 조건을 갖춘 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하지만 그녀야말로 지난 수십 년간 단 한번도 최고의 모델 자리를 내놓지 않은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모델임을 부정할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는 런웨이에 부적합하다는 핸디캡을 보란 듯 비웃으며, 더 많은 패션 화보와 광고에서 다양한 이미지로 활약을 거듭하고 있다. 또 가끔 브랜드의 얼굴로서 런웨이에 나서게 되는 때는 신체조건이 좋은 여타의 모델들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그녀만의 남다른 포스와 매력으로 무대를 압도하기도 한다.

케이트 모스가 처음 모델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은 런던 베이스의 모델 에이전시인 스톰의 창업자 사라 두카스(Sarah Doukas)와의 우연한 만남에서부터다. 케이트와 사라 두 사람 모두 런던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의 첫 만남은 바로 뉴욕의 JFK공항에서였다. 그때 케이트 모스의 나이는 14살이었고, 그 후 캘빈 클라인의 간판 모델로 활약하며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이 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5년 만에 옛 연인 마리오 소렌티와 작업

이탈리아의 신생 브랜드 ‘리우 조(Liu Jo)’는 자신들의 브랜드를 대표하는 얼굴로 케이트 모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케이트 모스는 쉽게 캐스팅이 되거나 스케줄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결혼과 출산, 육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도 그렇지만, 그는 모델 활동뿐 아니라 그간의 패션계 경력을 십분 발휘하며 영국의 대형 리테일 브랜드인 탑샵(Topshop)과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케이트 모스 바이 탑샵(Kate Moss by Topshop)’이라는 여성복 라인의 디자이너로, 프랑스의 가방 제조 브랜드 롱샴(Longchamp)의 게스트 디자이너로의 활약하며 더욱 바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리우 조는 케이트 모스를 포기할 수 없었고, 브랜드의 끈질긴 러브콜에 케이트 모스도 결국 수락을 했다. 하지만 모델 수락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어 있었다. 바로 옛 연인인 포토그래퍼 마리오 소렌티가 광고 캠페인의 포토그래퍼를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리우 조 측은 케이트 모스를 기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상당했기 때문에 캠페인 작업 스태프들은 케이트 모스와의 협의 하에 재능이 빛나는 신진들로 구성할 생각이었다. 만약 마리오 소렌티 같은 거물이 스태프로 투입이 되면 모델 비용뿐만 아니라 제작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었기에 이들의 고민은 컸다. 하지만 마리오 소렌티와 케이트 모스의 작업은 1995년에 시작된 옵세션 광고 이후 거의 15년여 만이고, 이 사실만으로 광고 캠페인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또 그 두 사람의 협업이라면 또 다시 얼마나 멋진 이미지를 세상에 생산해 낼지 예상할 수 있었기에 ‘리우 조’ 측은 결국 케이트 모스의 조건을 수락했다.

아침 8시 모델 콜타임이 넘었는데도 ‘리우 조’ 광고 캠페인 촬영 현장에 케이트 모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거물급 모델이라 시간 개념이 조금 루즈한 모양이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튜디오 한 쪽 소파에 걸쳐진 옷더미 속에서 아주 가냘픈 몸매의 여자 한 명이 스르륵 걸어 나왔다.

케이트 모스였다.

콜타임이 되기 한참 전부터 소파에 파묻혀 있던 다소 허름한 차림의 여자가 바로 그 유명한 케이트 모스였다니, 나는 그녀를 눈앞에 두고 이리저리 다니면서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그녀와 작업을 해 본 적이 있는 현장의 스태프들 중에서는 소파에서 쉬고 있는 그녀가 케이트 모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허름한 차림에 초췌한 모습으로 현장에 나타난 케이트 모스였지만, 헤어, 메이크업, 의상까지 준비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서니 이전의 모습은 기억조차 나지 않고 오직 광고 캠페인을 주도하는 매력적인 케이트 모스만 보였다.

▶그녀만이 개척해나갈 수 있는 미지의 영역
케이트 모스는 영국 브랜드 탑샵과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케이트 모스 바이 탑샵’의 디자이너로 나섰다.
케이트 모스는 영국 브랜드 탑샵과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케이트 모스 바이 탑샵’의 디자이너로 나섰다.

촬영 중인 그녀를 보니 왜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그녀를 통해 다양한 영감을 얻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그저 서 있는 피사체가 아니라, 포토그래퍼의 촬영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요구에 반응하고 응답하면서, 그야말로 사고하며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피조물이 되었다. 정말 인터렉티브(Interactive)하다는 말이 머릿속에 절로 떠오를 정도로 다른 모델들과는 분명 차별화가 되는 감성이 존재했다.

어떤 이는 케이트 모스의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든 이가 말했듯 모델로서 환상적인 프로포션을 가지지 못한 그녀이기에, 흘러가는 세월 앞에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처음부터 케이트 모스는 기존의 모델 길을 걸어온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의 몸매로, 또 지금의 나이로 그녀만이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아직 어떤 모델도 가보지 않았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케이트 모스야말로 아직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남아있는 모델이 아닐까. 아직도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그녀와의 작업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한, 그녀의 모델로서의 생명은 계속될 것임이 분명하기에.

사진 제공=조벡

조벡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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