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뮤직] 장안의 화제 ‘나가수’ 방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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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8일 12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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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시작된 지 10초만에 관객의 눈물을 뽑아낸 이유는?
●'서바이벌 예능'으로 최상의 라이브 환경을 창출한 '기적'

나가수는 청중평가단의 투표로 1명을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형식\'의 가요프로그램이다. 가수와 참가자 양쪽 모두를 긴장시키는 한국형 TV예능의 완성형이라는 평가다.
나가수는 청중평가단의 투표로 1명을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형식\'의 가요프로그램이다. 가수와 참가자 양쪽 모두를 긴장시키는 한국형 TV예능의 완성형이라는 평가다.

당초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제 4라운드 1차 경연이 열리기로 한 시각은 7월4일 월요일 저녁 7시였다.

그런데 오후 3시경 '긴급'이란 딱지가 붙은 문자가 도착했다. "금일 7시 공연이 8시로 늦춰졌으니…", 즉 1시간 늦게 도착하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고 덕분에 한 시간 여유 있게 일산 MBC 드림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철로 가는 내내 일요일(7월3일)에 확인한 3라운드 2차 경연의 감동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요정' 박정현과 '로커' 윤도현의 폭발적인 무대매너, '미남' 김범수의 음악적 내공, 뒤늦게 합류해 장안의 화제를 모은 조관우와 장혜진…. 과연 TV화면이 아닌 실제로 청중평가단으로 참여해 직접 감상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가슴이 싱숭거렸다.

'나가수' 녹화공연을 방청한다고 트위터에 알리자 지인들이 너나할 것 없이 축하답변을 보내왔다. "요즘 나가수 공연 보는 게 소원인 사람이 많다" "그런 행운을 얻어 너무 부럽다" 등의 내용이었다. 실제 나가수 공연을 미끼로 사기(티켓 판매)횡행하고 방송국 내에서도 일절 청탁을 하기 힘든 분위기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왔을 정도다. 이제 방영된 지 불과 4개월 된 '나가수'의 위력은 경이롭기만 하다.

지하철 3호선 정발산 역 일산동구청 앞은 거대한 상업지구가 된지 오래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젊음을 즐기는 문화특구다. 이곳과 맞닿아 있는 MBC 드림센터 뒤편부터 친절하게 "나는 가수다 방청 출입로"라는 팻말이 방청객을 맞이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이미 로비는 800여명의 '나가수' 방청객들이 질서 정연하게 입장을 대기하고 있었다.

■ 장안의 화제 '나가수' 한국대중 음악판에 충격

가수와 관객 사이에 감도는 긴장 속에 MBC ‘나는 가수다’가 집중도 높은 공연을 완성하고 있다. 4일 일산 MBC 드림센터 공개홀에서 진행된 공개 녹화에서 가수 박정현이‘이브의 경고’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제공|MBC
가수와 관객 사이에 감도는 긴장 속에 MBC ‘나는 가수다’가 집중도 높은 공연을 완성하고 있다. 4일 일산 MBC 드림센터 공개홀에서 진행된 공개 녹화에서 가수 박정현이‘이브의 경고’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제공|MBC

'나가수'의 특징은 500여명의 청중평가단이다. 1인당 3표를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은 세대별 성별로 배분돼 경연의 공정성을 반영한다. 게다가 매회 평가단이 교체된다. 제작진이 사전에 배정한 심사위원 없이 청중들의 투표에 의해 탈락자가 결정되는 사상 최초의 서바이벌 공연 프로그램인 셈이다. 그것도 이제 막 데뷔를 하는 신인이 아니라 경력 10년을 훌쩍 넘긴 중견 가수들이라는 점에서 한국가요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순위를 매겨 탈락자를 정한다는 '예능'의 옷을 입은 '나가수'는, 그 덕분에 두 가지 차별화된 무대를 제시하게 됐다.

첫째는 보다 치열해진 가수들의 경쟁이 바로 그것이다. 참가자들은 기존의 가요무대와는 전혀 다르게 기존의 유명곡을 어떻게 편곡해서 대중적으로 해석해야만 하는 의무감을 갖게 됐다. 그것도 단 한번의 '라이브' 무대에서 말이다. 이제껏 그 어느 무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극심한 긴장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둘째는 관중들의 태도 변화다. 이제까지 TV시청이란 편하게 즐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평가에 따라 국내 최고 가수들의 희비가 엇갈린다는 점은 청중들의 관전 태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최대한 라이브 무대에 빠져들어 어떻게든 최선의 세표를 행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시청률이 올라 최근 4~5년간 극심한 침체에 빠졌던 MBC 예능국을 기쁘게 만들고 있다. 15%의 시청률을 가뿐히 넘기며 주말예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나가수'는 이제는 시청률 부동의 1위인 KBS의 '1박2일'과의 전면전의 가능성까지 심심치 않게 거론될 정도다.

게다가 나가수에서 공개된 흘러간 옛 노래들이 어느새 음악 차트를 싹쓸이 하는 중이다. 신곡으로 먹고사는 음반관계자들이 충격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7시40분이 넘어서자 드디어 청중들의 입장이 시작됐다. 투표권을 가진 청중은 500여명이지만 실제 관객은 두 배 가까이 모인다고 한다. 우선 무대 참가자(가수 기획사 세션 댄스) 등 관계자가 100여명을 훌쩍 넘고 또한 청중이 부족할 것을 대비해 100~200여명을 더 초청하기 때문이란다.

8시가 되자 담당PD인 신정수 PD가 무대에 올라와 청중평가에 있어서의 주의점과 무대배경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특히 공연히 1시간 늦어진 이유 "무대 설치가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대신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전 스텝이 나서 문자메시지를 1000명의 관객들에게 돌렸다는 대목에서는 공연에 투여된 정성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열창의 향연 '나가수' 그 열기의 현장을 가다 . 김범수는 "내가 평생 음악할 수 있는 힘을 얻는 무대"라고 말한다. <사진제공 | MBC>
열창의 향연 '나가수' 그 열기의 현장을 가다 . 김범수는 "내가 평생 음악할 수 있는 힘을 얻는 무대"라고 말한다. <사진제공 | MBC>


'나가수' 500명의 청중평가단의 선택

"조금 잔인하기는 해도 청중 분들께 세 표가 주어졌습니다. 여러 고민의 과정이 있었는데 3표라면 음악의 다양성을 확보할만한 장치가 될 것 같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가수들이 지난 한주 최선의 노력을 다해 선곡하고 편곡한 노래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선택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주 테마미션은 '무대에서 도전하고 싶은 노래'였다. 평소에 자신의 스타일에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감히 시도해보지 못했던 '파격적' 선택을 권유한 것이다.

이어 무대 MC인 윤도현(YB)가 올라오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졌다. 그는 이미 자신의 이름을 내건 TV음악프로그램 진행은 물론 라디오 DJ로 오랜 기간 활약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MC였다. 2라운에서 MC를 맡았던 이소라가 탈락하자 3라운드부터 경연은 물론 진행까지 도맡은 것이다.

드디어 첫 무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단 7명의 가수가 단 7곡을 부르는 공연시간은 길어야 1시간 10분이다. 이이 무대에는 7명의 나가수 전속 하우스 밴드를 포함해 댄서 코러스 추가 세션맨이 촬영팀과 보조스탭과 뒤섞여 북적이고 있었다.

열창의 향연 '나가수' 그 열기의 현장을 가다. -조관우(왼쪽)와 장혜진.
열창의 향연 '나가수' 그 열기의 현장을 가다. -조관우(왼쪽)와 장혜진. <사진제공 | MBC>

1번으로 '조관우'가 등장하자 객석의 웅성거리는 술렁임과 무대 위의 혼란이 순식간에 정리됐다. 드디어 경연이 시작된 것이다.

1994년 '늪'이란 노래로 데뷔한 그는 1990년대 한국적 한을 절묘하게 풀어낸 신비로운 음색으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한 동안 그는 TV무대를 의도적으로 피할 정도로 신비주의를 오랫동안 지속한 정통파 '라이브' 가수였다. 그런 그가 10년 만에 공중파로 나온다는 사실도 화제가 됐을 뿐만 아니라 지난 회 '하얀 나비'에서 보여준 감미로운 미성은 "역시 조관우!"라는 탄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가 선택한 노래는 '남행열차'란 김수희의 트로트곡이었다. 관객들은 감탄사로 그의 선택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가 눈을 감자 관객들도 이내 침묵으로 세계로 빠져든다. 객석과 무대 모두.

무대상황을 총지휘하는 PD가 야광봉을 흔들자 이내 강렬한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미 지난주에 화제를 모은 바이올린니스트 김지윤 씨였다. 그는 2005년 제10회 이프란 니만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재원이었다. 나가수 무대는 점차 블록버스터 급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인트로가 끝나는 순간 조관우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관객의 고막에 전달됐다. 기존의 값비싼 라이브 무대에서도 쉽게 접하기 힘든 제대로 된 사운드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나가수 제작진이 "음악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조관우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의 표정이 금세 편안해졌다. 상당수가 금세 눈을 지그시 감고 감상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미 방송된 '나가수'에서는 가수들의 열창에 반응하는 청중들의 표정이 간주 사이사이에 배치되곤 했다. 그 때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청중들을 보고는 "조금은 과장된 것 같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 노래가 흘러나오는 데 바로 울어? "과장 아닐까?"

그런데 막상 실황으로 조관우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정말 단 10초 만에 '울컥'하는 느낌과 함께 눈물이 찔끔 새어나온 것이다. 이 무대에 참석하기 위해 고생한 것도 하나 없었고 이제 1번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감정이 몰입되는 이유를 필자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10년 이상 대중의 외면 속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을 가수에 대한 반가움, 그리고 그 가수가 여전히 영롱한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음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흘러간 모든 것은 좋았다라는 달콤한 추억이 빚어내는 묘한 감상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가수 한 명의 무대가 끝나고 3~4분의 브레이크가 주어졌다. 다시 새로운 공연을 위한 세팅시간이었다. 명성대로 참가가수들은 자신들이 일주일간 준비한 최고의 무대 매너와 최고의 세션들과의 화음을 뿜어냈다.

1분1초가 아까웠다. '아이돌의 디바'인 옥주현은 자신의 친구인 이효리의 '유고걸'로 관객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조명이 과한 것이 옥에 티였으나 화려한 뮤지컬 무대에 익숙한 그녀에게는 역동적 무대가 체질에 맞았을 수도 있겠다. 이어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를 박정현이, 윤도현은 이문세의 '빗속에서'를 열창했다. 더 놀랍게도 김범수와 장혜진은 아이돌 가수인 씨엔블루의 '외톨이야'와 카라의 '미스터'를 부르는 파격을 선보인 것이다.

마지막 무대는 지난주 탈락한 BMK의 뒤를 이은 가수 김조한이었다. 1990년대 중반 3인조 솔리드로 활약한 그는 해체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솔로로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은 실력파 뮤지션이었다.

'나가수'를 통해 1990년대 역전의 용사들이 하나둘씩 무대로 돌아온다는 생각에 가슴이 짠해졌다. 그때 음악을 했던 수많은 인물 가운데 많은 이들이 반짝 인기 뒤에 찾아오는 오랜 침체로 인해 무대를 떠나고 다른 직업으로 전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가수'란 무대는 꾸준하게 실력을 갈고 닦은 이들에게 다시 최고의 무대와 우레와 같은 성원으로 그들의 노력에 보답하고 있었다.

9시20분. 1시간10분의 치열했던 경연이 끝이 났다. 너무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음악적 포만감이 밀려왔다.

청중평가단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제는 7명의 가수 가운데 3명을 선택해야 한다. 어찌 보면 간단한 선택일터인데도 이들은 쉽게 답안지에 정답을 표기하지 못했다. 그 주저함이야 말로 경연에 참가한 가수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가수'는 장관이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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