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리베이트 의사… 수사 한달째 지지부진

  • 동아일보

경찰 “1000명 전원 수사” 큰소리 치더니…

“의약계의 고질적인 리베이트 관행을 뿌리 뽑겠다.”(4월 7일) “수사 중인 상황이라 밝힐 수 없다.”(5월 6일)

6일로 경찰의 ‘의사 리베이트 수수’ 의혹 수사가 한 달을 맞았다. 하지만 수사는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그래서인지 경찰은 수사 상황을 감추기에만 급급해한다. 수사 착수 당시 “의사와 제약사 간에 수십 년간 누적된 리베이트 환부(患部)를 도려내겠다”던 장담이 무색할 지경이다.

○ 의사 강력 반발에 경찰 ‘주눅’


울산지방경찰청은 지난달 7일 국내외 15개 제약사에서 돈을 받고 환자에게 특정 약품을 처방한 혐의(뇌물수수)로 전현직 공중보건의 3명을 불구속입건했다. 나아가 같은 혐의가 있는 의사 1000여 명도 전원 수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경찰은 “공무원 신분인 공중보건의와 국립병원 의사에게는 뇌물수수 혐의를, 일반병원 전문의에게는 배임수재 혐의를 적용해 처벌하겠다”는 강력한 대응 방침도 내놓았다. 울산 이외 지역 의사들은 해당 지방경찰청에 명단을 통보해 전방위 수사를 벌이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본보 4월 8일자 A12면, 14일자 A34면 참조
A12면 ‘의약품 리베이트’ 의사 1000여 명 수사

A34면 [기자의 눈/정재락]의사에게 유독 약한 경찰…


하지만 의사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하자 경찰의 자세는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조사 대상 의사들이 진료와 학술회의 참석을 이유로 계속 소환에 불응하자 e메일 조사나 변호사를 통한 서면답변서 제출도 허용해 일반 피의자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은 현재까지 몇 명을 조사했는지도 숨기다 동아일보가 취재에 들어가자 뒤늦게 8일 102명의 수사대상자 중 62명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권창만 울산지방경찰청 수사과장(총경)은 6일 “수사 중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법리 논쟁, 대처도 미지근


경찰 수사가 더딘 데는 대한의사협회와 수사 대상에 오른 의사들이 의료법의 단서 조항을 들어 ‘합법적인 돈’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작용하고 있다. 의료법 23조 2의 단서 조항에 ‘견본품 제공, 학술대회 지원, 임상시험 지원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 안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한동석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는 “지난해 11월부터 리베이트 적발 시 의사와 제약업체 양쪽 모두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됐지만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애매하다”며 “경찰이 이를 모두 불법으로 단정하고 쌍벌제 시행 이전의 행위까지 처벌하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경찰 역시 쌍벌제 시행 이전의 행위는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 명백한 견본품이나 단체나 기관에 대한 행사 지원, 임상시험에 대한 지원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의협 측이 경찰 수사방침을 잘못 알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명목상 합법이라 하더라도 의사 한 명이 수천만 원을 받는 등 사회통념상 지나치게 많은 금품을 받은 것은 형사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학술대회 지원도 식비 숙박비 교통비 등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제약사가 참가자에게 직접 지원을 한 경우는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제품설명회 지원도 현금으로 주고받는 것은 불법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려면 상당기간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지만 의사의 반발에 밀리면서 이 역시 여의치 않은 분위기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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