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1부]<5>세계가 주목하는 ‘종교공존 모범 코리아’

동아일보 입력 2010-07-26 03:00수정 2010-07-2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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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존의 학습
종교지도자들 나서니… 7개 종단 1965년부터 화합모임
美국무부도 찾아왔다… “종교분쟁 없는 비결 알려주오”
2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화계사에서 자리를 함께한 수유1동 성당 정무웅 주임신부(왼쪽)와 화계사 사회부장 덕성 스님. 두 사람은 “함께 바자를 열며 서로가 ‘내 종교, 네 종교’가 아닌 ‘이웃 종교’임을 느꼈다”며 “화합의 비결은 대화와 소통”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사례1 3월 15일 알렉산더 매클래런 미국 국무부 국제종교자유사무국 국장이 방한했다. 다종교국가임에도 종교 간 큰 분쟁이 없는 한국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과 종교 관계자들을 만나 종교 갈등의 해법을 구했다.
#사례2 6월 16일 까드히 사이드 알무로시드 두바이 보건성 장관이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해 두바이 환자의 진료를 맡길 협력병원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삼성서울병원이 두바이 환자유치에 성공한 것은 한국의 의료수준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중동의 VIP 환자들이 9·11테러 이후 반(反)이슬람 분위기가 강해진 미국에서 치료받기를 꺼리는 상황에서 ‘종교 갈등이 적은 한국 문화’ 덕도 많이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르는 사람끼리는 정치와 종교 얘기를 피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종교는 갈등의 원천이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전 세계에서 테러와 전쟁, 폭력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갈등 공화국’이라는 한국은 ‘종교 간 공존’에서만은 선진국이다. 각국 종교인들의 대화기구로 뉴욕에 본부를 둔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는 한국을 ‘종교평화 모범국가’로 선정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너와 나’로 갈려 싸우고 있는 한국 사회와 정치권이 한국 종교에서 배울 점은 없을까.

○ 공존의 현장, ‘수유리 모델’


2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화계사에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승적을 내려놓고 떠난 주지 수경 스님을 대신해 사회부장 덕성 스님이 수유1동 성당 정무웅 주임신부를 반갑게 맞았다. 덕성 스님과 정 신부는 스스럼없이 안부를 묻고 악수를 했다. 정 신부가 먼저 “올해도 바자 해야죠”라고 묻자 덕성 스님은 “그럼요”라고 대답했다.

이웃한 불교 조계종 화계사, 천주교 수유1동 성당, 한국기독교장로회 송암교회는 ‘난치병 어린이 돕기 종교연합 바자’를 매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에 열고 있다. 이날 정 신부와 덕성 스님은 8월 첫 주에 올해 첫 준비모임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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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는 2000년에 시작됐다. 수유1동 성당이 1980년대 중반 송암교회에 기독교 학교인 한신대 교정에서 바자를 열도록 알선해 달라고 부탁한 것을 계기로 두 곳이 교류하다가 화계사까지 의기투합해 행사를 개최해왔다. 부활절이면 화계사는 교회와 성당에 축하 화분을 보내고, 석가탄신일에는 수유1동 성당과 송암교회가 ‘부처님 오신 날’ 축하 플래카드를 건다.

정 신부는 “행사를 함께하는 힘은 타 종교를 인정하고 껴안는 것”이라며 “사회구제 활동을 하는데 네 종교 내 종교가 따로 있느냐”고 말했다. 덕성 스님은 “10년간 행사를 함께하며 성직자들은 물론이고 신자들 사이에 타 종교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수유리 모델’은 다른 곳으로도 ‘전염’됐다.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성북동 성당, 덕수교회도 2008년부터 2년째 공동 바자를 열어 지역 청소년을 돕는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다. 길상사는 크리스마스 때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성북동 성당과 덕수교회는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거는 행사도 매년 이어오고 있다.

○ 지도자들이 모범 보였다


물론 일부 종교행사 현장에서는 타 종교에 대한 적대적 발언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 차원에서 종교 화합이 가능했던 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상대를 이해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각 종교 지도자 간의 대화가 화합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1965년 10월 18일 서울 용당산호텔(현 한강호텔)에서는 한국의 6대 종교 지도자들이 첫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은 한국 종교계가 화합과 공존으로 가는 출발점이었다. 인도 뉴델리에서 WCRP 결성이 논의된 것이 1968년이고, 일본 교토에서 첫 대회를 개최한 것이 1970년인 점을 감안하면 세계적으로도 선구적 모임이었다.

그 뒤 국내 3대 종교를 대표하는 지도자였던 김수환 추기경, 강원룡 목사, 청담 스님은 수차례 모여 종교 간 대화를 주도했다. 이런 흐름 속에 7대 종단(개신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이 참여하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1986년)와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1997년)가 탄생했다. 김남석 KCRP 사무총장은 “당시 종교지도자들 사이에는 대화를 통해 타 종교를 알아야 종교 갈등이 완화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무지개의 7가지 색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아름다운 것처럼 각 종교가 화합해야 사회가 아름다워진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한국엔 종교 화합의 전통이 있다고 말한다. 김종서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한국에선 무속신앙을 기반으로 유불선 세 종교가 공존하고 포용해왔다. 조선 말기 그리스도교가 들어온 뒤에도 전통은 이어졌다”며 “이런 전통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 다문화사회 대비해야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도 종교 갈등의 싹이 조금씩 보이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다. 4대강 사업 등 정치사회 현안을 둘러싸고도 종교별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이정배 감리교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는 “요즘 불교가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며 “기독교가 포용적인 전통문화와 좀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는 “사회 쟁점이 되는 가치를 놓고 종교 간 견해차가 나타나면 정치와 종교 이슈가 결합해 갈등이 커진다”며 “종교 관련 정책에 있어서도 정부가 공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문화사회로 가면서 이슬람교 등 외래종교에도 대비해야 한다. 재단법인 한국이슬람교에 따르면 현재 국내 무슬림(이슬람 신자)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10만여 명. 예배를 드리는 공간인 이슬람성원(聖院)은 서울 부산 안양 전주 등 전국에 10곳이며 작은 예배소도 40여 곳에 이른다.

한내창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는 “요즘 종교계에서는 ‘타 종교’ 대신 ‘이웃 종교’라는 표현을 쓴다”며 “한국사회가 종교의 대화법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불교시각서 접근하니 그리스도 더 잘보여”

‘종교대화 씨튼연구원’은 매년 네 차례 종교 간 대화를 위한 세미나를 연다. 6월 경북 김천시에서 열린 하계세미나에 참석한 연구원들. 사진 제공 종교대화 씨튼연구원
‘이웃 종교를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며 진리를 향해 함께 순례하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1가에 있는 ‘종교대화 씨튼연구원’의 홈페이지(www.setondialog.or.kr) 인사말은 이런 문구로 시작한다.

천주교 ‘사랑의 씨튼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종교 간의 학문적 대화를 목적으로 1993년 문을 열었다. 종교인들의 사랑방인 셈이다.

씨튼연구원은 출범 당시 서강대 교수로 있던 김승혜 수녀를 중심으로 전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 길희성 전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등 10여 명이 함께했다.

현재는 인천가톨릭대 교수인 송용민 신부, 이정배 감리교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 중앙승가대 교수인 미산 스님 등 각 종교에서 설립한 대학의 성직자 겸 교수 12명이 타 종교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구원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 연구원들은 1년에 네 차례 세미나를 여는데 그중 한 번은 1박 2일 동안 사찰과 천주교 피정의 집, 기독교 시설을 돌며 상호 친목을 다진다. 또 성직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웃 종교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종교강좌를 연다. 지금까지 강의 주제는 ‘도교와 그리스도교’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의 순례’ ‘그리스도교 시각에서 본 유교의 영성’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비교 영성’ 등이었다. 이 밖에 종교 간 대화와 관련된 내용의 서적들을 번역 출판한다.

연구원장인 최현민 수녀는 “다른 종교를 공부해 보니 그 종교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됐다”며 “불교적 시각에서 접근하니 그리스도교가 제대로 보였고 불교의 진리 안에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미산 스님은 “성직자끼리의 갈등은 서로를 잘 몰라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다”며 “여기서 서로 밥 먹고 차 마시며 공부하다 보니 부처와 하나님의 뜻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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