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1부]<2>좌빨-꼴통 대립을 넘어 공약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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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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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다름’ 그리고 ‘소통’
진보 ‘성장’에 눈을 뜨고 보수 ‘분배’를 이야기하다

《미국산 쇠고기, 세종시, 용산 철거민 참사, 무상급식, 천안함 폭침, 4대강….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사회를 처절하게 갈라놓았던 주제들이다. 이들은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귀결됐다. 사안마다의 사실관계는 차치하더라도 진보가 왜 보수에 비해 먹을거리 안전에 과민해야 하는지, 수도 분할에 찬성해야 하는지, 치수(治水)에 소극적이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보수 역시 마찬가지. 둘은 필요 이상으로 갈라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같은 ‘갈라짐’에는 정치권이 ‘아군’을 규합하기 위해 이념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상대방을 ‘이상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좌빨’ ‘좀비’ ‘꼴통’ ‘알바’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희망의 움직임도 있다. 아직은 그 세(勢)가 미약하지만 보수와 진보가 서로 공약수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진보의 진화
기존 좌파 실패 인정…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 강조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출신인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한국 진보의 파산’을 선언하고 2008년 ‘뉴레프트(New Left) 운동’을 제안했다. 그는 “진보진영이 그간 보수를 친일파, 독재, 부패세력이라고 비난해왔다”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우지 않는 좌파를 지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진보는 사회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중심과제로 삼아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한반도선진화포럼이 좌우 소통의 장으로 마련한 토론에서 “보수와 진보 모두 새로운 정체성 정립을 위해서는 당분간 ‘새로운 진보 대 옛 진보’, ‘새로운 보수 대 옛 보수’의 내부 투쟁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 성향의 사단법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도 ‘복지를 통한 성장’을 화두로 꺼내들었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는 ‘성장 대 분배’와 같은 대립적 프레임을 거부했다. 이들은 복지와 성장을 ‘한몸’으로 본다. 진보진영에서도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과거 북한 추종세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대표되는 ‘북한체제’와 ‘북한주민’은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다수다. 이와 함께 북한 인권과 민주주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진보진영에서는 극단적 이념에서 벗어나 사회경제 문제의 해결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5년 여름 온건진보 성향의 교수들이 ‘좋은 정책포럼’(공동대표 임혁백 고려대 교수, 김형기 경북대 교수)을 창립해 시대 흐름에 맞는 대안모델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 포럼은 창립선언문을 통해 좌파노선이 결국 실패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 보수의 보수(補修)
낡은 이념대립 거부… ‘약자의 눈물’ 닦는 복지 주목


보수의 ‘환골탈태’ 움직임은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이 가장 대표적이다. 부패한 반민주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탈피해 자유주의 개인주의 시장주의 국제주의라는 보수 본래의 가치를 되돌리자는 것이었다.

뉴라이트는 두 차례의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보수진영이 잇달아 패배하면서 출범했다. 이들은 기존의 낡은 이념과 극단적 대립을 거부했다. 이들은 2008년 ‘따뜻한 보수’를 내세우면서 △홀몸노인, 노숙인, 외국인 근로자 돕기 운동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운동 및 공공 예절 지키기 △다문화가정을 돕기 위한 ‘배움터’ 운영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뉴라이트의 이론적 기반을 구축한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조전혁 대표 등은 2008년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현실정치로 진출했다. 하지만 뉴라이트의 일부 세력이 지나치게 현실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진영 논리’에 빠지면서 뉴라이트 역시 기존 보수세력에 희석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 밖에도 보수진영은 최근 기존 프레임을 벗어나 지평을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보수는 복지와 분배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 이 같은 반성을 반영해 최근 보수진영에서도 진보의 대표적 가치인 복지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보수진영의 대표 논객인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보수가 노동자와 서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포용적인 우파가 등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남은 과제는
정치 아닌 정책은 左右공약수 많아… 해외는 聯政 흔해

“정책에서는 공통점이 많다. 성장 대 분배, 자유 대 평등, 개인 대 공동체 등에서 앞쪽은 보수가, 뒤쪽은 진보가 중시하지만 어차피 한쪽만 취할 수는 없다. 정책은 결국 성장과 분배의 매트릭스다. 정치가 갈등을 유도하지만 않는다면….”(조국 서울대 법학부 교수)

보수 학자인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학과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도 “정책적인 부분에서는 갈등 해소 가능성이 크다”면서 “보수, 진보 간 입장 차이는 있지만 공통분모도 많이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학자들은 경제문제에선 일부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접점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만 남북문제는 공통분모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 차이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보수와 진보의 ‘통섭’은 해외에서는 흔한 일이다. 유럽 국가들의 좌우연정이 대표적이다. 독일 기민당(우파)의 당수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좌파 사민당과 대연정을 통해 정권을 잡았다. 영국의 보수당은 전통적 보수 진영이 상대적으로 등한시해온 여성과 환경 문제에서 대안을 제시했고 최근 총선에서 집권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대방을 윽박질러서는 통합이 안 된다”면서 “합의를 강조하는 이들이 많은 데 근본적으로는 차이를 먼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동존이(求同存異)라는 말이 있다. 같은 것은 추구하고 이견은 남겨둔다는 뜻이다.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차이는 그대로 인정하되 적극적으로 공통점을 찾아가자는 의미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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