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점 쏜 본드걸 “전광판 보고 너무 놀라 멍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19일 03시 00분


파리=김동욱 기자
트리플 플립 점프 앞두고 이물질 발견 타이밍 놓쳐
강심장-지치지 않는 체력, 끝까지 냉정함 잃지 않아
자신이 세운 최고 점수 7개월 만에 갈아치워

무르익은 연기‘피겨 여왕’의 표정은 변화무쌍했다. 김연아가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9∼2010시즌 그랑프리 1차 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연기를 하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17일 쇼트프로그램 연기 장면. 영화 007시리즈 주제곡에 맞춰 총을 쏘는 포즈를 취하는 등 본드걸 이미지를 완벽하게 연출했다. 파리=AP 연합뉴스
무르익은 연기
‘피겨 여왕’의 표정은 변화무쌍했다. 김연아가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9∼2010시즌 그랑프리 1차 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연기를 하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17일 쇼트프로그램 연기 장면. 영화 007시리즈 주제곡에 맞춰 총을 쏘는 포즈를 취하는 등 본드걸 이미지를 완벽하게 연출했다. 파리=AP 연합뉴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우리나라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인 건 처음이네요.”

18일 피겨 그랑프리 1차 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이 열린 프랑스 파리 팔레 옴니스포르 드 파리 베르시 빙상장. 파리 교민 안재석 씨는 “파리에 사는 한국인 모두가 김연아를 보러 온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김연아(19·고려대)는 10명의 선수 중 맨 마지막에 등장했다. 그가 빙판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석에서는 ‘김연아’를 외치는 연호가 계속됐다. 한국인, 외국인이 따로 없었다. 객석 곳곳에는 태극기가 휘날렸다.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 첫 번째 과제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깔끔하게 소화했다. 하지만 두 번째 과제인 트리플 플립 점프를 포기했다. 점프 직전 빙판 위에서 이물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관중석에서는 탄식이 쏟아졌다.

하지만 김연아의 실수는 한 번뿐이었다. 나머지 과제를 깔끔히 마무리한 그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승리를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김연아는 경기 후 “전광판에서 210점이라는 숫자를 봤을 때 놀랐다. 첫 대회부터 최고점을 얻어 기분이 멍했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이날 우승으로 6년간 이어온 아사다 마오(일본)와의 라이벌 관계에서 완벽하게 우위를 점했다. 김연아와 아사다는 1990년 9월에 태어난 동갑내기. 이들이 처음 만난 건 2004년 12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였다. 당시 아사다는 2위 김연아보다 35.08점이나 많은 점수 차로 1위에 올랐다.

이제는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김연아는 이번 대회에서 2위 아사다에게 36.04점 차로 앞서며 우승했다. 김연아는 이미 올해 4대륙 대회와 세계선수권에서 내리 아사다를 꺾었다. 시니어가 된 뒤 여덟 번의 맞대결에서 5승 3패로 앞섰다. 김연아에게 당분간 라이벌이라고 불릴 만한 선수는 없다. 김연아의 라이벌은 자신뿐이다.

김연아의 장점은 감정 조절 능력과 지치지 않는 체력. 주위 사람들은 김연아를 ‘강심장’, ‘대인배’라고 부른다. 주위의 시선 집중과 부담을 스스로 조절하는 심리적인 능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김연아는 3월 세계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점프 실수를 했지만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고 연기를 이어갔다. 이번 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도 트리플 플립 점프를 뛰지 못하며 흔들릴 뻔했지만 나머지 과제를 무사히 마쳤다. 실수를 하면 나머지 연기도 그르치는 다른 선수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는 피겨선수로서의 완벽한 신체와 체력을 갖췄다. 시니어 무대에 데뷔하고 나서 잠시 허리와 고관절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로 이후 큰 부상 없이 경기에 임했다. 꾸준한 연습과 체력 관리가 힘이 됐다. 김연아는 “근육의 균형을 유지해 최상의 컨디션을 이어가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파리=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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