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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9월 28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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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연설 시간을 1시간 20분이나 넘긴 장황함, 황당한 음모론에 바탕을 둔 독설, 유엔 헌장을 찢어서 내던지는 식의 돌출 행동….
최근 화제가 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유엔총회 연설은 유엔총회의 연설무대가 도발적이고 남을 자극하는 기회로 남용된 주요 사례로 거론된다. 그러나 유엔총회 회의장을 이런 식으로 발칵 뒤집어 놓은 연설자는 카다피뿐만이 아니다. 25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이 유엔 역사상 가장 정신 나간(the craziest) 연설 10개를 정리해 소개했다.
역사상 가장 길었던 연설은 1957년 크리슈나 메논 주유엔 인도 대사가 기록했다. 그는 카슈미르 지방을 둘러싼 인도와 파키스탄 간 분쟁 안건을 놓고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 목적으로 무려 8시간 넘게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 도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가 되돌아와 의사의 혈압 체크를 받으며 1시간 동안 남은 연설을 계속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기행(奇行)으로 유명한 사람은 1960년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그는 필리핀 외교관들이 소련 제국주의를 비난하자 “미 제국주의의 아첨꾼들”이라며 신발을 벗어 테이블을 두드리기도 했다. 역시 1960년대 미국을 제국주의로 비판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회의 기간 중 머문 뉴욕의 자신의 호텔 방에 생닭들을 데려다 놓은 것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냉전시대 유엔총회는 첨예한 대립의 장이기도 했다. 미소 대립이 격하던 시절 헨리 카보 주유엔 미국 대사는 소련이 우호의 징표로 준 독수리 모양의 나무도장 안에서 작은 도청용 마이크를 핀셋으로 집어내 소련 외교관들을 경악시키기도 했다. 소련이 자국 내 미국의 스파이 활동 의혹을 거론하며 공격한 것에 대한 맞대응이었다.
독설도 오래된 메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1974년 연설에서 “나치즘, 제국주의, 식민주의, 그리고 이런 것들보다 더 나쁜 시오니즘(유대주의)이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1987년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미국이 당시 자국 내 게릴라 세력인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다고 비판하며 “람보는 영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쏘아붙였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겨냥해 “어제 악마가 여기 왔다가 간 뒤 아직도 유황(지옥) 냄새가 난다”고 한 2006년 연설은 대표적인 독설로 자주 거론된다.
또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같은 해 연설에서 다르푸르 대학살(2003년 수단 정부가 아랍계 민병대를 투입해 40만 명이 죽은 사건)을 부인하며 “서방의 구호단체들이 꾸며낸 음모”라고 주장해 전 세계의 비웃음을 샀다. 이 밖에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엔 연설 무대를 서방 공격의 장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정상으로 꼽힌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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