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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9월 2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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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로 발전한 제조업은 필연적으로 서비스업의 요소를 도입한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제품 시장 포화와 공급과잉이 낳은 수익성 저하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제품과 서비스의 결합은 새로운 가치와 시장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런 사실은 이미 선진국의 제조업을 통해 증명됐다. 최근 제품-서비스를 결합하면서, 동시에 환경까지 보호하는 서비사이징(servicizing)이 새로운 혁신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서비사이징을 통해 제조업체는 기존의 제품 생산 및 공급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사업 모델을 바꾸고,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소비 축소를 이끌어 환경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홍대순 아서디리틀(ADL) 부사장은 “재고비용 감소와 설비 축소 등을 통한 추가적인 수익 확대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제록스, 효과적 문서 작업 컨설팅
복사기와 프린터를 생산·판매하는 제록스는 사업 환경 변화와 그에 따른 위기의식에서 서비사이징 사업모델을 만들어냈다. 당시(1990년대)는 복사기와 프린터를 제조하는 경쟁업체가 늘고, 고객들마저 인쇄비용 절감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상황이었다.
제록스는 고민 끝에 ‘문서에 관한 고객의 모든 고민을 풀어주겠다(The Document Company)’는 야심 찬 슬로건을 만들어냈다. 이 슬로건과 함께 2001년 ‘제록스글로벌서비스(XGS)’라는 컨설팅 부서가 등장했다.
XGS는 고객사의 인쇄기기 현황을 분석해 좀 더 효율적으로 문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컨설팅하고 그 실행까지 책임진다. 즉, 자사의 핵심 사업인 인쇄기기 생산·판매와 더불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관련 서비스까지 제공해 사업의 영역을 확대한 것이다.
XGS는 구체적으로 △한 고객사의 전 사업장에 있는 복사기, 프린터, 복합기, 스캐너 등 인쇄기기의 수 △각 사업장의 근무 인원 △월평균 출력량과 출력 비용 △근무 시간 동안의 인쇄기기 가동률 △인쇄기기의 감가상각 현황 등을 꼼꼼하게 조사한다.
그리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우선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인쇄기기의 수를 줄여 이들을 재배치한다. 전문적인 분석 도구로 고객사의 장비와 직원별 출력 사항을 모니터링해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인쇄 작업을 줄이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우상윤 한국후지제록스 영업부장은 “불필요한 출력을 줄이면 전력 사용은 물론이고 종이와 토너 등 인쇄 관련 부자재와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폐기물 배출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 듀폰, 직접 車 도장공장 운영
현재 서비사이징은 환경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화학산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듀폰이다. 최선 한양사이버대 경영학부 교수는 “듀폰은 서비사이징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이란 점에서 큰 시사점을 준다”고 설명했다.
과거 듀폰은 자동차 회사에 도장용 페인트를 판매했다. 하지만 서비사이징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직접 도장공장을 운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새 사업모델은 포드자동차의 영국 공장에서 1990년대 말 성공적으로 시행됐다.
이 비즈니스 모델의 도입에 따라 듀폰의 매출과 수익은 페인트 판매량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자동차에 페인트칠을 하느냐에 따라 좌우되게 됐다. 듀폰은 수익성 극대화를 고민하던 중 페인트 사용량을 최소화하면서 많은 자동차에 도색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자사 페인트의 특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높은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포드가 자체적으로 도장 공정을 운용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설계할 수 있었다.
이어서 듀폰은 포드 공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매자의 페인트 수요를 측정해 주고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도와주는 ‘페인팅 유지 보수 ECS(Engineered Consulting Service)’ 컨설팅 서비스도 시작했다. ECS는 연간 공정 계획, 품질 보증과 생산성 향상,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안전성 향상 프로그램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듀폰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 추가 매출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컨설팅 과정에서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파악해 자사 제품 개발 역량도 키워나갈 수 있었다.
○ ‘제품으로서의 서비스’와 ‘문화’ 접목해야
전문가들은 서비사이징을 추진하는 기업은 직원과 협력사 등 내외부 이해관계자의 오해를 막고, 우선적으로 협력을 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딜로이트 컨설팅의 이성욱 이사와 김인 이사는 “서비사이징의 성과는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서비사이징 자체가 상품 판매를 억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기업은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구하고, 동시에 치밀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윈윈(win-win) 구조를 확신시켜야 한다. 서비사이징 사업 추진에서 내외부를 대상으로 한 변화관리가 필수적인 이유다.
한편 제품-서비스 결합의 가장 이상적 형태는 서비스 자체가 상품이 되고, 서비사이징에 맞춰 기업의 기본 가치나 사명, 근본적인 특성이 바뀌는 것이다. 박광태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제품-서비스 결합에 성공한 국내외 기업 대부분은 ‘제품으로서의 서비스’와 ‘문화’를 접목하는 형태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IBM이 메인프레임 컴퓨터 등 하드웨어 생산에서 벗어나 정보기술(IT) 및 기업 경영과 관련한 토털 서비스와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때로는 서비사이징이 기업문화를 바꾸기도 한다. 우상윤 한국후지제록스 부장은 “예전에는 직원들이 인쇄기기의 특장점만 달달 외우고 다녔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고객사의 전체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서비사이징(servicizing)
지속가능경영의 한 방법으로 제조업체가 제품 생산 및 공급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사업모델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해 판매하거나 제품과 관련한 서비스를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 소비자들의 제품 소비를 줄어들게 해 환경 측면의 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 기존 제품-서비스 결합과 차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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