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때로는 ‘저지르기’가 명답될 수도

  • 입력 2009년 4월 18일 02시 58분


몇 해 전 일본 소니의 한 임원이 삼성전자 임원에게 급속한 성장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삼성 임원은 이 질문에 “저지르기”라고 답했다고 한다. 소니는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지만 삼성은 일단 큰 방향이 정해지면 행동부터 했기 때문에 반도체나 휴대전화 등에서 기록적 성장을 이뤘다는 의미다.

사격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사수가 총을 지지대에 고정한 상태에서 목표물이 조준경의 십자선 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격발하는 ‘트래핑(trapping)’ 방식이다. 목표물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면 트래핑은 좋은 성과를 낸다. 하지만 목표물이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심하게 움직일 때 고수들은 다른 방법을 활용한다. 저격수들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목표물을 추적하면서 격발하는 ‘트래킹(tracking)’이란 방법으로 이동 표적을 공략한다.

트래킹은 삼성 임원이 말한 ‘저지르기’와 유사하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일단 행동부터 시작한 뒤 세부적인 계획을 수정하면서 목표를 달성하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은 치밀한 계획을 수립한 뒤 행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계획 수립(formulation) 후 실행(imple-mentation)’이라는 전략 프로세스는 지난 100년 동안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조직 이론 분야의 거장인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의 칼 와익 교수는 이런 통념에 반하는 주장을 펴 학계에 충격을 줬다. 그는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치밀한 계획을 세운 후 행동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큰 방향이 정해지면 구체적 계획이 없더라도 신속하게 행동하라는 조언이다.

와익 교수는 예측 불가능하고 급변하는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런 방식을 따르면 행동의 구체적 목적이나 논리, 계획 등은 오히려 행동하는 과정에서 사후적으로 나타난다. 학자들은 이를 ‘사후적 합리성(posterior rationality)’ 이론이라고 부른다. 또 실무에서는 행동(doing)이 계획(thinking)보다 앞선다 해서 ‘행동 우선(doing first)’ 경영이라고 부른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행동 우선 경영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이미 충분한 경험이나 지식을 가진 기존 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최대한 정교한 계획을 세운 후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완벽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특히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상품이나 사업을 최초로 만들어 내려면 행동 우선 경영이 필수이다. 창조적 혁신은 그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시도를 최초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치밀하고 정확한 사전 계획을 세우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오랜 시간을 투자하면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울 수는 있지만 그러다가 경쟁자가 시장을 선점해 버리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최근 창조와 혁신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행동 우선 경영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많은 선도 기업들은 여러 전략적 대안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이를 수시로 재평가해 역동적으로 조정하는 ‘실물 옵션(real option)’ 전략을 도입했다. 또 환경이 변할 때마다 수시로 계획을 수정하는 리얼타임 기획(real-time planning)을 도입하는 기업도 많다. 아직도 20세기 산업사회 마인드에 사로잡혀 치밀한 계획 수립에만 골몰하고 있는 경영자라면 와익 교수의 교훈을 되새겨봐야 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국내 첫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31호(2009년 4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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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090D3>▼강부장 개조 프로젝트/지시 불이행, 꼬박꼬박 말대꾸…무개념 직원 어떻게 다룰까?

리더가 아무리 좋은 리더십을 발휘하려 해도 좋은 팔로십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지나친 개인주의 행태를 보이는 직원, 독불장군식으로 행동하는 직원, 리더의 권위를 무시하는 직원이 대표적 예다. 나쁜 부하는 나쁜 상사 이상으로 조직과 동료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업무가 팀워크로 이뤄지는 만큼 좋은 팔로십은 리더십 못지않게 중요하다.

▼International Business Planning/짝퉁 신화는 없다, 知財權에 눈떠라

중국 체리자동차의 주력 모델 QQ는 마티즈의 디자인과 부품을 그대로 사용한 완전 복제품이다. 하지만 중국은 디자인의 의장권자에 상관없이 ‘선(先)등록주의’에 의한 무심사 등록을 허용한다. 심지어 의장권 보호법조차 없어 많은 중국 기업이 해외업체의 디자인을 버젓이 자사 의장권으로 등록하고 있다. 국제 통상 업무가 있는 기업은 반드시 법률회사의 도움을 받아 자사의 지적재산권 범위를 확인하고 보호 방안을 찾아야 한다.

▼HR School/글로벌 보상 없으면 무늬만 세계 경영

한국 기업의 해외 지사 경영자 중에는 리더의 기본인 인사 관리 지식이나 인사 업무 경험이 없는 사람이 꽤 많다. 심지어 현지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조차 영업, 회계, 생산 같은 다른 업무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조직 구성은 불필요한 시행착오와 마찰을 불러일으킨다. 글로벌 기업이라면 국내 여건에 맞춰진 보상 기준을 따르기보다는 글로벌 보상 제도를 따로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

▼The McKinsey Quarterly/불황기 영업의 황금률

용기 있는 기업은 경기 침체를 영업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기회로 활용한다. 하지만 비용을 줄인다고 영업부서 후방의 지원 인력과 기능을 없애거나, 일선 영업 담당자의 해고를 비롯한 전면적인 비용 절감에 나서면 오히려 참담한 결과만 맞을 뿐이다.

▼Harvard Business Review/고객 욕구 현미경으로 분석하라

불황기에 접어들면 기업들은 변화하는 고객의 욕구를 이해하고 홍보 전략과 상품 공급을 조정해야 한다. 기업들은 불황에 대한 고객의 심리적 반응에 따라 고객을 분류할 필요가 있다. 또 고객이 필수품에서부터 소모품까지 제품을 분류하는 기준을 주시하여 이를 토대로 고객을 나눠야 한다. 이런 전술을 택하는 기업들은 일률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기업보다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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