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금융위기, 석학에 묻다<1>

  • 입력 2008년 10월 11일 02시 56분


공매도, 투자리스크 줄여주는 긍정측면도 봐야

헤지펀드 분야 대가 스티븐 브라운 뉴욕대 교수

무너진 시장신뢰 회복위해 구제금융은 불가피

한국정부, 인위적 조치 취하면 부작용 올수도

《동아일보는 KAIST 금융전문대학원(금융 MBA스쿨)과 공동으로 세계적 석학들과 릴레이 인터뷰 및 대담을 갖고 최근 금융위기에 대한 대가들의 분석과 대안을 전해드립니다. KAIST는 금융MBA 육성을 위해 스티븐 브라운 뉴욕대(NYU) 교수, 레인 휴스턴 런던 임피리얼칼리지 교수, 제임스 실링 위스콘신대 교수, 제이 리터 플로리다대 교수 등 4명의 금융 석학을 초빙했습니다. 본보는 대담이나 인터뷰 외에 한국 첫 고품격 경영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를 통해 석학들의 강의 내용도 전해드립니다. 세계 최고 금융 전문가들이 펼치는 지식의 향연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이번 금융위기의 본질은 신뢰와 자신감의 위기입니다. 구제금융이 만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사라진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헤지펀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스티븐 브라운 뉴욕대 교수는 KAIST 최원호 교수와의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월가가 자리한 뉴욕대에서 20년 넘게 재무를 가르쳐 온 그는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위기라는 조류를 거스르지 않고 이에 순응하는 것이 필요하며, 구제금융은 이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매도 금지와 같은 규제 강화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브라운 교수의 KAIST 강의 내용은 14일 발간되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9호(10월 15일자)에 실린다.

▽최원호 교수=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한국도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환율이 폭등하고 있다. 이번 위기의 근본 원인은 어디 있다고 보나.

▽스티븐 브라운 교수=이번 금융위기가 모기지 시장에서 촉발됐다고 하지만, 원인이 그것뿐이었다면 이번 위기는 그다지 큰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모기지 시장의 위험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위험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아무도 몰랐다는 점이다.

금융기술의 변화, 감독기관의 부실, 월가의 과도한 단기 인센티브 등 이번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은 많다. 하지만 나는 이를 ‘신뢰(trust)의 위기’로 규정하고 싶다. 금융산업의 본질은 신뢰다. 신뢰를 잃은 금융기관은 살아남을 수 없다. 여러 금융기관, 특히 베어스턴스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나는 베어스턴스가 지난해 7월 말 산하 헤지펀드를 청산했을 때부터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판단한다. 많은 사람이 베어스턴스가 분명히 문제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이를 제때 적절히 보고하지 않았다. 베어스턴스는 괜찮다고 했지만 헤지펀드는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속았다고 생각했고, 그 순간 신뢰는 사라져 버렸다. 이후 어느 누구도 투자은행에서 나오는 재무 보고서를 믿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현 위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신뢰의 위기’다. 무너진 신뢰는 곧 ‘자신감의 위기’를 초래했다. 현재의 위기는 금융 비즈니스의 존립 근거인 신뢰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최=7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놓고 논란이 많다. 국민의 세금으로 부실 금융기관을 도와주는 것이 과연 온당하냐는 지적도 많은데….

▽브라운=미국 정부가 사라진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정책 중 하나가 구제금융이다. 사실 이것은 정부가 최소한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산들에 한해 시행하는 것이다. 과거의 실제 가치가 아니라 현재 시장이 평가하는 만큼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구제’라고 할 수도 없다. 이 같은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정부는 시장에 일부분이라도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 지금은 무엇보다 신뢰와 자신감의 회복이 중요하다.

구제금융과 관련해 정치 논리가 횡행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하지만 지금 이 위기의 불길을 잡지 못하면 향후 어떤 사태가 올지 모른다. 이미 퇴직근로자를 위한 은퇴연금의 자산 손실은 심각한 수준이다. 주식시장이 추가 하락해 은퇴연금 손실이 더 커진다면 그때는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기가 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년 동안 시카고대 주변은 시카고 지역에서 이름난 슬럼가였다. 1970년대 시카고대는 학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주변의 땅을 헐값에 대대적으로 매입해 재개발에 나섰다. 이후 시카고대 주변은 몰라보게 발전했다. 반면 맨해튼 할렘 근처에 위치한 컬럼비아대도 비슷한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다. 지역 주민들이 시세보다 싼 값에 땅을 팔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할렘은 여전히 맨해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 있다.

아직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현재 시장가치, 즉 헐값에 팔려고 하지 않는다. 7000억 달러는 헐값에 팔지 않으려는 금융기관들을 유인하기 위한 비용이다. 구제금융을 통해 정부는 금융시장에 ‘이런 위기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산을 매입하고자 하는 수요자(정부)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 정부가 이런 의지를 보여주면 금융기관의 태도 또한 달라질 것이고 실제 비용이 7000억 달러 이하로 줄어들 수도 있다.

▽최=하지만 구제금융 정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불안감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브라운=바이킹 출신의 잉글랜드 왕 크누트(Cnut)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이 모두 크누트를 위대한 왕이라고 추앙하자 어느 날 그는 바닷가에서 자신의 한 손을 들었다. 그 즉시 밀물이 밀려들어왔고, 그가 다시 손을 들자 이번에는 썰물이 빠져나갔다. 사람들은 일제히 “위대한 왕이 조류를 다스린다”며 그에 대해 외경심을 가졌다. 물론 크누트는 조수간만의 차를 알고 일부러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미친 심리적 효과는 엄청났다.

정부도 바람과 조류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현재로선 금융시장을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게 해야 사람들이 자신감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구제금융 법안이 만능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록 그 효과가 작다 해도 가시적인 효과와 자신감 회복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구제금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최근 한국에서는 환율이 급등해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 등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환율 급등세를 억제하지 못했을뿐더러 환율 상승폭만 더 커졌다.

▽브라운=한국 정부가 현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인위적으로 하려 한다면 한국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 경제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작은 나라가 전 세계 시장의 위기 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는 보통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현 상황에서의 조류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고 이 조류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정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최원호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재무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 연구 분야는 뮤추얼펀드와 사모펀드다.

스티븐 브라운 교수는

호주 출신인 브라운 교수는 호주 모내시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재무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일대를 거쳐 1986년부터 뉴욕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다우 이론, 헤지펀드의 시스템 리스크 등 헤지펀드와 관련한 수많은 논문을 펴냈으며 재무 학술지 ‘리뷰 오브 파이낸셜 스터디(Review of Financial Studies)’의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브라운 교수 동아일보 인터뷰

헤지펀드는 작은 늑대

헤지펀드는 작은 늑대

금융시장에 들어가면

유동성을 움직이게 해

부실자산 경종 울리는

공매도를 금지 시키면

주가 추가 하락할 수도

헤지펀드 전문가인 스티븐 브라운 교수는 헤지펀드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인식은 대부분 편견에 기인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일반인들은 헤지펀드를 전 세계를 주무르는 ‘금융 강도’쯤으로 생각하고, 심지어 금융회사 종사자들조차 헤지펀드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헤지펀드가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 대상에 투자하고 누구나 팔지 않으려고 하는 대상을 파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헤지펀드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을 양과 늑대 이야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정부는 양(일반 투자자)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칩니다. 그러나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는 양(시장의 유동성)을 움직이게 하려면 아주 작은 늑대(헤지펀드)를 우리 안에 들여보내야 합니다.”

브라운 교수는 헤지펀드가 아시아 외환위기를 촉발시켰다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당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헤지펀드 업계의 대부 격인 조지 소로스를 비열한 사기꾼이라고 강력히 비난했죠. 하지만 실제 대다수 헤지펀드는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손해를 보았습니다. 스스로의 돈을 훔치는 사기꾼이 있을까요. 또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말레이시아 거부들이 외환위기 이전부터 호주 부동산에 투자해 상당한 이익을 올린 흔적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실제 돈을 번 사람은 따로 있는 셈이죠.”

그는 외환위기 당시 말레이시아와 한국 정부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비교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헤지펀드를 비난하는 기고를 실었고 외국인 투자에도 상당한 제한을 가했습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처음 만나 투자를 요청한 해외 투자가가 소로스였습니다. 이후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말할 필요가 없겠죠.”

한편 브라운 교수는 세계 각국 정부가 추가 주가 하락을 우려해 잇따라 공매도(Short Selling·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팔자 주문을 내는 것) 금지 법안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공매도 금지가 오히려 주가 추가 하락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공매도가 대규모 주가하락을 야기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매도는 투자자산에 대한 헤지를 가능하게 해 투자 위험을 감소시키고, 부실 자산에 경종을 울려줍니다. 또 특정 자산에 대한 시장의 효율적인 가치평가를 가능하게 해, 주가가 그 기업에 관한 더욱 많은 정보를 반영하게 하도록 합니다. 이는 주식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필요한 불확실성을 없애 주가 상승의 기반을 마련해줍니다.”

그는 오히려 공매도가 없다면 시장 위험이 더욱 커지고 주가 하락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며, 공매도 금지가 주가 하락을 초래한 경우도 많다고 주장했다.

브라운 교수는 어떤 투자의 경우 공매도가 없으면 투자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너럴모터스(GM)가 혁신적인 전기자동차 기술을 개발했다고 가정해보죠. 투자자들은 이 기술에는 확신을 갖고 있지만, 쇠락하는 미국 자동차산업 전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면 투자를 망설일 것입니다. 이때 투자자들은 GM 자동차 주식을 산 액수만큼 다른 자동차 회사들의 주식을 공매도해 자동차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 위험을 제거하고 혁신적 새 기술에만 투자할 수 있습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국내 최초의 고품격 경영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9호(10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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