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강명]“낙하산, 당적 버려라” 부메랑 맞은 홍문표

  • 입력 2008년 9월 18일 02시 59분


“누구는 백 좋고 줄 좋아서,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줄 타고 내려와 갖고 자리에 앉게 되면, 10년, 20년, 30년, 평생 한 사람들은 또 밀려야 되잖아요? (중략) 그러면 탈당하지 말고 그냥 당적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감사를 내놔야 원칙이지, 그렇잖아요?”

2006년 10월 17일 한국농촌공사에 대한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홍문표 한나라당 의원이 박병용 농촌공사 감사를 질책하던 내용 일부다.

홍 의원은 이날 17대 총선 낙선 인사인 박 감사가 농촌공사에 ‘낙하산’으로 오게 된 것과 농촌공사 임원이 되어서도 열린우리당 당적을 버리지 않은 것을 비판했다. 일주일 뒤 열린 한국마사회 국감에서도 이우재 마사회장이 열린우리당 당적을 보유한 것에 대해 “공기업의 공인이 정당의 당적을 갖고 있다는 것은 국민이 많이 오해할 수 있다”면서 사퇴를 촉구했다.

이때 했던 말이 2년 만에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됐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에게 밀려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그가 한나라당 당적을 보유한 채 농촌공사 사장에 임명됐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그를 농촌공사 사장으로 임명 제청한 것은 이달 2일,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것은 12일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충남도당은 17일 “홍 전 의원이 아직 충남 홍성군·예산군 당협위원장”이라고 확인했으며 한나라당 홈페이지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홍 사장은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에서도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대학에서 농화학을 전공한 것과 국회 농해수위 위원으로 활동한 것을 제외하면 농촌공사 업무와 관련 있는 경력도 딱히 없다.

농식품부가 12일 마사회장으로 임명 제청해 현재 내정자 신분인 김광원 전 의원도 아직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않았다. 그 역시 2006년 마사회와 농촌공사 국감에서 “여기가 정당은 아니잖나. 당원들이 모여서 뭘 하자고 그러느냐”며 공기업 임원들의 당적 보유를 비판했다.

김 전 의원은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임명장을 받게 되면 탈당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는 홍 사장의 반론도 듣기 위해 농촌공사에 전화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았다.

정권 교체 뒤 공수(攻守)의 위치가 바뀐 정치인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낙하산’ 논란을 불러올 것을 알고 있었을 두 사람은 왜 좀 더 처신에 유의하지 못했을까.

장강명 산업부 tesomi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