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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9월 13일 01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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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질적 콤플렉스 꺾은 장점에 대한 통찰> 》
자신들의 국가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는 중국인들도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바로 변방 유목 민족과의 전쟁에서 제대로 이겨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한고조 유방은 흉노 정벌에 나섰는데 포로가 될 뻔하다 뇌물을 주고 겨우 빠져나왔다. 또 한고조가 죽은 후 여후(呂后·한고조의 황후)가 권력을 장악했는데, 흉노 왕이 자신과 결혼하자는 편지를 보냈다. 이 모욕적인 제안에 대해 여후는 “나는 너무 늙어 결혼할 수 없다”고 공손하게 거절해야 했다. 천하의 영락제도 몽골 원정에서 큰 피해를 보았다.
반면 한무제와 당태종은 서역 원정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중국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특히 당태종은 대부분 전투에서 주변 민족을 압도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주인공이 바로 이정(李靖·571∼649)이다. 그는 수나라의 관리였는데, 당태종이 장안을 점령한 뒤 그의 부하가 됐다. 특히 돌궐 원정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둬 당대 최고의 명장이 됐다.
이정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군의 장점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의 사회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중국군의 장점을 찾아냈다. 유목 민족과 달리 중국군은 체계적인 국가 및 사회제도를 갖췄다. 따라서 조직력, 교육 수준, 물자 측면에서 중국군은 유목 민족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정은 이런 장점을 극대화했다. 먼저 그는 보병의 기본대형을 사각대형에서 삼각대형으로 바꿨다. 여기서 그의 천재성이 드러나는데, 자신의 장점을 인구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이전의 많은 장수들은 병력을 투입해서 진의 크기만 키우려 했다. 하지만 덩치가 커지면 그만큼 느리고 둔해져서 효율성이 저하된다. 특히 중국의 진정한 장기인 조직력과 교육 능력은 물론 풍부한 병력과 물자라는 장점마저도 훼손시킨다.
이정은 반대로 한 개의 대형을 두 개의 삼각형으로 나눠 한 단위 부대의 병력은 절반으로 줄인 대신 부대의 수는 두 배로 늘렸다. 이로 인해 병력 수라는 장점을 극대화하면서도, 소규모가 된 진은 더욱 민첩해졌다. 유목 기병은 거칠고 야성적이지만 삶 자체가 자기중심적이고 교육 수준도 떨어지다 보니 복잡한 대형을 만들거나 습득하는 측면에서는 취약했다. 이정은 이런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또 유목 기병의 최강 병종은 중장기병이다. 탱크처럼 밀고 들어오는 이들을 맞상대할 경우 패할 게 뻔하다고 생각한 이정은 중장기병대를 과감하게 줄이고 값싸고 훈련도 쉬운 경기병대를 키웠다. 그 대신 유목 민족의 중장기병에 대해서는 사격으로 대응케 했다. 따라서 전 보병의 3분의 1을 궁수와 노병으로 편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보병의 백병전 능력이 떨어진다. 이정은 이 문제도 간단히 해결했다. 기병이 근접하면 활과 쇠뇌를 버리고 창병으로 전환토록 한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활 하나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전술이다.
이정의 성공은 오늘날의 조직 운영에서 인문학적 소양이 왜 필요한가를 말해준다. 한 사회의 특징, 장점, 기호를 정확히 진단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적 요인을 잘 파악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환경 변화의 속도가 빠른 경우에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 이면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잘 분석하고 장점을 개발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임용한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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