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안대회]번역인재가 문화경쟁력

  • 입력 2008년 8월 16일 02시 59분


베이징 올림픽에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때이다. 올림픽을 목전에 둔 2일부터 7일까지 6일 동안 중국 상하이에서는 국제번역가연맹(FIT) 총회와 대회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문화 올림픽의 하나로 간주할 만큼 중국 정부가 관심을 갖고 지원했고, 언론에서도 많은 비중을 두고 보도하였다. 한국에서는 한국번역가협회의 송영규 회장을 비롯한 8명의 일행과 개인 참가자 다수가 참가하였다.

국제번역가연맹은 전 세계 번역가의 구심점으로 국제적 규모의 유네스코 산하기구이다. 1953년 유럽에서 결성된 이래로 유럽과 북미 중심으로 활동했다.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개최하는 의미 있는 행사다.

이번 총회에서는 ‘번역과 문화의 다원화’라는 전체 주제를 놓고 88개 섹션에 1600여 명의 학자가 참여하여 사흘에 걸쳐 4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자도 다수 참가하였고, 한국의 학자들도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문고전의 번역에 관심을 가진 나로서는 번역학과 번역의 국제적 조류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연맹이 결성된 시기를 전후하여 새로운 학문으로 등장한 번역학의 최근 조류가 어떤 것일지, 또 번역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현황이 궁금하였다. 출판 시장에서 저서보다 번역서가 많은 한국 출판계의 특수한 실정, 학술과 산업에서 번역이 차지하는 중요성, 그리고 한문고전의 국역, 한국 문학과 주요 저작의 외국어 번역 요구도 크게 부각되는 상황에서 국제적 조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의 다원화가 주제인 만큼 서양과 동양의 저작을 상호 번역하는 주제가 상당히 많이 다뤄졌다. 이 중에서 ‘아리랑’ 개정 3판의 소개, ‘몽고비사’의 중역(重譯), ‘황제내경’의 영역이 흥미를 끌었다.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다음 두 분야에는 수십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첫 번째가 과학기술분야 번역의 전문성 강화와 양적 팽창이다. 한국번역가협회에서도 산업에 필요한 번역이 절반 이상일 만큼 활성화되는 추세다. 일반 번역보다 전문성과 정확성이 요구되는 이 분야에 더 큰 관심이 촉구된다.

그 하나인 의학 번역도 마찬가지다. 이번 총회에서 의학용어학회도 새로이 회원 학회로 가입하였다. 중국한의학용어의 국제표준용어(ISN) 확정과 영어 번역을 주제로 20여 명이 논문을 발표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동의보감’의 영역을 시도한 우리나라 학자가 술어 때문에 고민한 글이 떠올랐다.

다음으로 번역석사 제도를 주목했다. 중국에서는 지난해에 번역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번역석사(MTI)라는 제도를 정식 학위제도로 만들어 연구형 인재가 아니라 응용형 인재로 양성하고, 그 위상을 경영학석사(MBA)의 수준으로 잡았다. 이 제도의 목표는 전 세계 경제 문화의 변화를 빠르게 수용할 인재의 양성이다.

한국에서도 통번역 석사 제도가 일부 시행되고, 성균관대와 고려대에 번역으로 석사학위를 주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위상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앞으로 사회에서나 학계에서 번역과 번역가를 대우하는 수준을 향상시킬 필요성이 있다.

“번역은 햇볕을 받아들이기 위해 창문을 여는 행위”라고 영국의 밀 스미스는 말했다. 세계 여러 나라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번역 행위를 통해 급변하는 세계의 정보와 문화를 수용하려 애쓴다. 이번 회의에 참가하여 우리도 번역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햇볕을 받아들이는 데 뒤처지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였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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