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심상민]감동은 없고 말장난만 남은 ‘불량 TV’

  • 입력 2007년 9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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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사람들에게 TV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표표히 인터넷으로, 모바일로 떠나가고 있다. TV를 TV에서 보기 싫어하는 이 초유의 사태는 단연 한국이 선도하고 있다. 껍질을 잃어버린 달팽이 TV. 기껏 만들어서 돈도 못 벌고 메시지도 못 주고 문화도 발신 못 하는 TV. 여의도는 이 문제를 인터넷과 통신 탓으로 돌리지만 그건 아니다. 불량 TV로 변해 가고 있는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다.

콘텐츠 관점에서 불량이냐 아니냐는 3가지 기준으로 본다. 예술적 가치, 경제적 가치, 사회문화적 가치다. 우선 예술성을 보자. 매일 밤, 주말 저녁 황금시간대 공중파 TV는 트레이닝복 입고 깔깔대는 연예인 세상이다. 채널마다 포맷도 출연자도 대량 복제다. 노골적인 말 폭력과 거친 품행은 문화 공해, 예술 오염에 와 있다. 감동과 매혹, 카타르시스와 몰입은 찾기 어렵다.

경제성은 어떤가? 방송 프로그램 한 편에 수출 단가가 2006년에 평균 4319달러였다가 2007년 3686달러로 급감했다. 특히 드라마는 2005년 4921달러 수준에서 2007년 2818달러로 2년 만에 반 토막 났다. 수출 총액도 줄고 있다. 결국 방송 산업의 성장 엔진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TV 콘텐츠를 판별하는 세 번째 사회문화적 가치 평가는 더 혹독하다. 연예인 커넥션이 너무 심하다. 프로그램 포맷을 막 베낀다. 문화 창조 능력이 약하다. 장르도 스타일도 다양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다. 내용은 진부하고 기법과 기교만 현란하다.

대한민국 TV 콘텐츠는 벼랑 끝에 와 있다. 다시 문화산업 관점에서 TV를 생각해 본다. 버릴 텐가? 그럼에도 TV 산업은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 문화 콘텐츠의 사령부, 즉 센터가 되어야만 영화 게임 공연 출판과 교육이 죄다 살 수 있다.

우선 TV 콘텐츠 권리를 확실하게 따지고 인정받는 새로운 TV가 되어야 한다. 학생 골든벨에 연예인 골든벨까지 하는 식으로 자기 복제하면 단가가 떨어질 수 있다. 안에서 베끼면 밖에서도 몰래 베끼기 마련이다.

또 채널마다 특성과 전문성을 지녀야 한다. 공영방송이길 원한다면 드라마나 쇼는 상당 부분 손떼야 한다. KBS가 교양, MBC가 드라마와 토론, SBS가 오락과 스포츠라면 이런 대표 브랜드에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창의적 기획과 편성 시스템, 열린 유통이 필요하다. 콘텐츠는 본질적으로 연구, 개발 제품인데도 이에 투자하는 기풍은 찾기 힘들다. 콘텐츠 유동성을 확보할 전문 유통 메커니즘도 시급하다. 영화에서 TV로, TV에서 캐릭터로 자유롭게 콘텐츠가 움직여 가치를 높이도록 하는 콘텐츠 유통 신디케이트가 자리 잡아야 한다. 유통이 활성화돼야 TV 콘텐츠가 무한 팽창할 디지털 콘텐츠 산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불량 TV는 스스로 개혁하긴 힘들다. 통신업체와 같은 문화 아웃사이더에게만 맡기기도 그렇다. 불량을 정확히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며 실천할 능력과 책임을 가진 새로운 문화창조자 그룹을 기대해 본다.

심상민 성신여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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