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버지니아공대 학생회가 보낸 편지

  • 입력 2007년 4월 19일 23시 22분


참사의 슬픔을 이겨 내기도 버거울 버지니아공대 학생회가 그제 주미 한국대사관에 감사의 e메일을 보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의 지도자들, 그리고 국민이 한 몸으로 보여 준 위로와 애도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다.

학생회는 “지금은 인종, 신념, 계층을 넘어 폭력을 이겨 내려는 사람들 모두에게 힘을 줘야 할 때”라며 “한국이 그런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대(solidarity)’를 보여 준 데 대해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행동이 우리 학생들과 한국 국민 사이에 장벽을 만들지 않을 것이며, 만들도록 놔두지도 않을 것”이라는 다짐도 했다.

학생회의 편지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범인이 이민 1.5세대 한국인이어서 200만 교민과 10만여 명의 유학생이 어려움을 겪지나 않을까, 한미 관계가 불편해지지나 않을까, 적이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 차원의 조문사절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 우리를 버지니아공대 학생들은 오히려 위로하고 안심시켰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이들의 정신에 공감하고 있다. CNN과 NBC, 뉴욕타임스 등은 희생자 추모, 범인의 행적, 경찰의 늑장 대처, 총기제도의 문제점을 주로 다루고 국적이나 인종문제와 관련한 선정적 보도는 자제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국민은 ‘이것은 한국인의 문제가 아니다. 위로는 고맙지만 사과할 필요는 없다’는 미국 사회의 반응에 안도하면서 슬픔을 나눠 가질 수 있는 길이 없는지 안타까워하고 있다. 오랜 친구로서, 문명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자세다.

그럼에도 일부 누리꾼의 악의적 댓글과 신문의 냉소적 보도 태도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한 신문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 방에 33명…이로써 우리 총기 기술의 우수성이 다시 한번…’이라고 브리핑하는 모습을 그린 만평(漫評)을 실었다가 부랴부랴 취소했다. 우리는 버지니아공대 학생회의 편지에서 배워야 한다. 극도의 슬픔과 충격 속에서도 휴머니즘과 이성(理性)의 기초 위에서 사유하고 판단하는 그들에게서 미국과 인류사회의 양식(良識)이 살아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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