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84>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2월 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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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불탄 것은 초군이 고릉에 들면서 인근 민가의 곡식을 털다시피 해서 모아둔 며칠분의 군량이었다. 당장 3만이나 되는 군사의 다음 끼가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광무산에서 배운 대로라면 패왕은 거기서 군사를 물리고 서초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해야 했다.

“적은 이미 마음먹고 방벽을 쌓고 보루를 높여 진채를 굳건히 했습니다. 하루 이틀 싸움으로 뺏을 수 있는 진채가 아닙니다. 군량도 없이 날을 끌며 에워싸고 있다가 광무산에서와 같은 낭패를 되풀이할까 걱정됩니다. 우선 팽성으로 돌아가 기력을 회복한 뒤에 다시 유방을 잡도록 하시지요.”

항양 항장 같은 피붙이들도 그렇게 패왕에게 권했다. 하지만 패왕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모처럼 한왕 유방을 벌판으로 끌어냈고, 또 한바탕 복격전(伏擊戰)으로 여지없이 때려눕힌 뒤였다. 이제 한칼만 내뻗어 숨통을 끊어버리면 모든 일이 끝날 것 같은데, 다시 놓아 보낼 수는 없었다.

“여기는 광무산이 아니다. 한군 진채는 벼랑 위에 세워지지도 않았고, 또 우리 땅 서초도 여기서 멀지 않다. 우리가 군량이 없으면 우리에게 에워싸여 있는 저들은 더욱 궁색할 것이다.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재앙이 이른다 했다. 이번에 또 유방을 놓아 보내면 하늘도 나를 버릴 것이다. 날랜 말을 팽성에 있는 계포에게 보내 군량과 군사를 보내오게 하라. 그리고 당장의 군량은 군사 500명을 서초로 들여보내 가까운 곳에서 긁어모아 보게 하라. 한신이나 팽월의 원병이 오기 전에 여기서 유방을 끝장내야 한다.”

패왕은 그렇게 우기면서 고집스레 한군 진채를 에워싼 채 풀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팽성으로 유성마(流星馬)를 띄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를 풀어 성부(城父) 쪽에서 군량을 긁어모으게 했다.

다시 고릉의 진채를 두고 한군과 초군 사이에 며칠이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어차피 오래가지는 못할 싸움이었다. 떠난 지 사흘도 안 돼 돌아온 유성마가 패왕에게 기막힌 소식을 전했다.

“팽성이 떨어지고 주국(柱國) 항타(項타)는 관영에게 사로잡혔습니다. 관영은 패현(沛縣) 설읍(薛邑) 유현(留縣)을 차례로 휩쓴 뒤에 소성(蕭城)을 떨어뜨리고 상현(相縣)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계포는 어찌 되었느냐? 광무산에서 떠난 지 보름이 넘었는데 아직 팽성에 이르지 않았단 말이냐?”

“계포 장군은 우현(虞縣)에서 한나라 상국 조참의 군사를 만나 일진(一陣)을 크게 지고 근처의 작은 산성(山城)에 들어 농성 중이라 합니다.”

하지만 패왕은 도무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 막 한왕 유방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자신의 도성을 치고 봉지를 휩쓸고 다닌단 말인가. 도대체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비굴하고 천박한 데다 교활하기까지 한 유방 같은 자를 주인으로 모시는 하찮은 것들이. 감히.

그런데 다음 날 다시 군량을 거두러 성보 쪽으로 갔던 군사들이 돌아와 패왕에게 더욱 기막힌 소식을 전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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