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황우석 교수를 믿었던 사람들

  • 입력 2006년 1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엊그제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황우석 석좌교수의 2004년 및 2005년 ‘사이언스’지 발표 논문이 조작됐으며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는 없었다고 최종 보고서에서 밝혔다. 이로써 몇 달을 끌어 온 논란이 가라앉고 양분된 공론(公論)권도 봉합되어 다시 차분한 일상으로 회귀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돌이켜 보면 이번 황 교수를 둘러싼 논쟁은 처음부터 공론권이 잘못 끌려 들어가 잘못된 국면에서 잘못된 논쟁을 벌인 잘못된 싸움이었다.

문제는 이번 조사위 보고서가 입증한 것처럼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 여러 사람이 여러 날에 걸쳐 검증 분석해서 겨우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바이오과학기술의 최첨단 주제이다. 심지어 한국바이오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완규 전 서울대 총장 같은 전문학자도 “이번 논쟁의 진실을 판단할 충분한 지식을 갖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황 교수 논문의 진위(眞僞)에 대해서 전문학자들의 서클이 아니라 한 대중매체의 방송 프로그램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복제줄기세포’를 둘러싼 전문적인 논의가 대중적인 논쟁이 되고 비전문인들끼리 찬반이 갈라져 판가름 싸움이 달아올랐던 것이다.

황 교수에 대한 반대 진영은 서울대 조사위의 최종 보고로 마침내 ‘진실 게임’에서 이겼다는 승리감을 과시하는 사람도 있는 눈치다. 반대로 그동안 황 교수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실의와 낙담에 빠져 있는 듯도 싶다. 잘못된 주제를 놓고 잘못 말려든 논쟁의 잘못된 결말이라 할까.

분명한 것은 황 교수를 둘러싼 공론권의 논쟁은 처음부터 ‘진위를 둘러싼 진실의 게임’이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직 그 첨단 분야의 소수 전문가끼리나 할 수 있는 게임이다. 비전문의 문외한들이 함부로 끼어들 수 있는 논쟁은 아니다. 나는 한 방송사에서 복제줄기세포에 관한 ‘최후의 진실’을 알았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특종을 하게 된 방송PD도 그걸 알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일반 국민이 황 교수를 믿고 있을 때 황 교수 논문에 의문을 제기한 ‘복면의 제보자’의 제보를 듣고 그 말을 믿었던 것이다. 비록 그 또한 제보의 진위를 검증할 위치에는 있지 않았지만….

그래서 결국 배아줄기세포를 둘러싼 논쟁은 서로가 알고 있는 ‘진위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 누구 말을 믿느냐 하는 ‘믿음의 싸움’이 됐다. 그랬기에 비전문의 문외한들이 쉽게 끼어들고 말려들고 편이 갈라져 작은 ‘종교전쟁’처럼 싸움이 달아올랐던 것이다. 거기에는 나도 포함됐다.

조사위의 최종 보고서를 통해 황 교수를 불신했던 사람들은 ‘믿음의 게임’에선 일단 승자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줄기세포의 진위에 대한 판단능력이 황 교수의 논문을 게재한 ‘사이언스’의 편집자보다도, 황 교수에게 최고과학자상을 수여한 심사위원들보다도, 또는 황 교수를 찾아간 대통령과 정보과학기술보좌관보다 뛰어나다고 자만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황 교수를 믿었던 사람도 그의 복제줄기세포의 진실을 믿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건 처음부터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그들이 안다고 믿은 것은 황 교수의 과학이 아니라 인간, 예컨대 성적이 뛰어나 의대에 진학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1, 2, 3지망을 모두 수의학과로 적었다는 사람, 3D 업종에 종사할 사람이 없어 수십만 명의 외국노동자를 불러오는 판에 달력에서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의 3요일을 없애 버리고 소 돼지의 울음과 분뇨 냄새로 가득한 환경 속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연구하는 사람… 등으로 알려진 그런 인간을 믿었던 것이다.

스캔들은 모든 것을 폭로한다. 소박하게 그를 믿게 했던 당초 이미지와는 달리 이제 보니 황 교수가 지나치게 정부 권력에 밀접했다는 사실은 지지자들을 당황케 한다. 그것은 황 교수를 고발한 젊은 과학자들이 처음부터 학계의 전문 서클이 아니라 ‘언론권력’에 접근해 제보했다는 사실과 함께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과 믿음은 그 대상을 초월한다. 설혹 한 사람이 또는 나라가 그에 값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애 조국애 자체는 그 대상을 초월해서 귀한 것이다.

최정호 객원 大記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