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나 복지의 측면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구구조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형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특히 작은 국토에 인구가 더 크게 늘지 않고 이른 장래에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니 환영할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인구구조만 선진국형이 되는 게 과연 좋은 일인지는 의문이다.
인구구조 변화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저출산 현상 때문이며, 그 결과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귀착된다. 지금까지 정부는 고령사회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출산율 높이기를 가장 중요한 대책으로 설정하고, 출산을 권장하는 사회 제도 문화적 환경 마련에 힘을 쏟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출산 장려 외에도 고령사회에 대한 대비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많다.
우선 태어난 아기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영아사망률이 비록 낮은 수준이지만, 2002년 출생아 1000명당 약 5.3명꼴로 일본에 비해 2명 정도 높다. 지역마다 영아사망률도 다르고 전반적으로 도시에 비해 농촌지역의 영아사망률이 높다. 이는 아직도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영유아가 많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영유아기의 건강은 청소년기뿐만 아니라 평생의 건강 수준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출산 장려 못지않게 출생한 아기의 건강한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인구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둘째, 앞으로 노인 인구에 포함될 중년 인구의 건강 유지와 증진에 더욱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현재 보건소 등에서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참여를 원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건강을 생각해 볼 여지도 없는 사회 환경에 처한 다수의 사람은 완전히 소외돼 있다. 이들이 노인 인구에 편입됐을 때 질병과 활동장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이들의 질병 치료와 복지 서비스를 위한 사회적 자원이 크게 요구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중년층, 특히 여성이면서 스스로 건강을 챙길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건강보험을 국가가 관리하는 차원에서는 얻을 수 없고, 위험군에 속한 인구집단을 발견해 직접 찾아가는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셋째,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일탈로 보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현재 우리는 결혼을 통해 자녀를 출산한 가족을 ‘보통 가족’으로 여기며, 국가의 출산 장려 문화 역시 이러한 가족 가치관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젊은 세대의 성문화나 가족관이 이와는 크게 다를 수 있다. 최근 실시된 고려대 예방의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2004년 한 해에 약 48만 명이 출생했으며 약 35만 명이 인공 임신중절로 지워진 것으로 집계됐고 그 절반 이상이 부모가 미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혼이건 미혼이건 편견이나 낙인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녀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보장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 마련이 요청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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