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영태]‘한집 식구 2.9명 시대’를 사는 법

  • 입력 2005년 12월 30일 03시 09분


코멘트
며칠 전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잠정 집계 결과가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특성이 과거와 비교해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전반적인 인구구조가 선진국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 홀로 가구’의 가파른 증가와 저출산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 가구당 인원이 놀랍게도 채 3명도 안되는 2.9명에 불과했으며, 지난 5년간 우리나라 인구가 2.4%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한다. 여성 인구가 35년 만에 남성 인구보다 많아진 것도 뿌리 깊었던 남아선호사상의 퇴조 가능성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처럼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는 가족과 가정의 구조적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경제나 복지의 측면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구구조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형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특히 작은 국토에 인구가 더 크게 늘지 않고 이른 장래에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니 환영할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인구구조만 선진국형이 되는 게 과연 좋은 일인지는 의문이다.

인구구조 변화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저출산 현상 때문이며, 그 결과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귀착된다. 지금까지 정부는 고령사회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출산율 높이기를 가장 중요한 대책으로 설정하고, 출산을 권장하는 사회 제도 문화적 환경 마련에 힘을 쏟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출산 장려 외에도 고령사회에 대한 대비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많다.

우선 태어난 아기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영아사망률이 비록 낮은 수준이지만, 2002년 출생아 1000명당 약 5.3명꼴로 일본에 비해 2명 정도 높다. 지역마다 영아사망률도 다르고 전반적으로 도시에 비해 농촌지역의 영아사망률이 높다. 이는 아직도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영유아가 많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영유아기의 건강은 청소년기뿐만 아니라 평생의 건강 수준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출산 장려 못지않게 출생한 아기의 건강한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인구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둘째, 앞으로 노인 인구에 포함될 중년 인구의 건강 유지와 증진에 더욱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현재 보건소 등에서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참여를 원하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건강을 생각해 볼 여지도 없는 사회 환경에 처한 다수의 사람은 완전히 소외돼 있다. 이들이 노인 인구에 편입됐을 때 질병과 활동장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이들의 질병 치료와 복지 서비스를 위한 사회적 자원이 크게 요구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중년층, 특히 여성이면서 스스로 건강을 챙길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건강보험을 국가가 관리하는 차원에서는 얻을 수 없고, 위험군에 속한 인구집단을 발견해 직접 찾아가는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셋째,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일탈로 보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현재 우리는 결혼을 통해 자녀를 출산한 가족을 ‘보통 가족’으로 여기며, 국가의 출산 장려 문화 역시 이러한 가족 가치관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젊은 세대의 성문화나 가족관이 이와는 크게 다를 수 있다. 최근 실시된 고려대 예방의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2004년 한 해에 약 48만 명이 출생했으며 약 35만 명이 인공 임신중절로 지워진 것으로 집계됐고 그 절반 이상이 부모가 미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혼이건 미혼이건 편견이나 낙인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녀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보장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제도 마련이 요청된다.

이제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으로, 부모와 두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뿐만 아니라 미혼의 엄마와 아가가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정이 함께 실리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시기이다. 이틀만 지나면 새해다. 인구 고령화에 대비하는 다양한 노력과 함께 다양한 가치관에 대한 모색도 함께 시도되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