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성희]똑똑해져서 괴로운 군중

  • 입력 2005년 12월 2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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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 있는 덩어리를 가리키는 용어 중에서 가장 급수가 낮은 말이 군중(mob)이다. 건전한 공론장을 구성하는 공중(public), 산업화와 도시화의 결과 모여들어 사회를 이루는 대중(mass)과 달리 군중이란 이질적인 사람이 모인 집단(crowd) 중에서도 특히 폭력적이거나 별 규범이 없는 부류를 지칭한다. ‘mob’은 점잖게 말해 ‘군중’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폭도’로도 번역된다. 이 군중이 정보화에 힘입어 나날이 똑똑해지고 있다.

군중은 우매하다는 폄훼는 이제 옛말이다. 정보화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인터넷과 개인휴대단말기(PDA)와 휴대전화를 통해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한다. 그뿐만 아니라 떼를 지어 압력을 행사하고,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밀치기도 한다.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면 가공할 힘을 발휘하곤 한다. 군중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이 움직이는 세상을 가리켜 ‘군중 지배(mobocracy)’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군중 지배의 증거들은 세계 도처에 있다. ‘참여군중(smart mob)’이라는 제목의 책을 쓴 미국의 작가 하워드 라인골드는 군중이 변화시킨 세상의 예로 2001년 필리핀의 젊은이들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 당시 상원이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탄핵 소송을 정지시킨 결정에 항거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 일을 꼽는다. 탄핵 정지 결정 75분 만에 2만 명이 모였고, 나흘 만에 100만 명이 모여 에스트라다는 결국 하야했다.

2000년 영국에서는 가솔린 가격 인상에 흥분한 사람들이 재빨리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이용해 기름 운송을 방해하는 시위를 조직했고, 1999년 미국의 시애틀에서도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집회가 유사한 방식으로 준비됐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보급률에서 단연 앞서가는 우리나라의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똑똑한 것이 반드시 선(善)이 아니듯, 이들 군중이 꼭 착하게만 모이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이슈가 없어도 번개처럼 모이는 ‘플래시 몹(flash mob)’도 있고, 악의를 품고 특정 기업이나 인물을 해코지하는 ‘안티사이트’도 있다. 초창기 자유시장경제가 확립될 무렵 정부의 독점적 지위가 약화되는 틈을 타서 해적, 고리대금업자, 밀수업자들이 이익을 취하려고 한 것과 같은 이치다. 군중 지배는 정보화가 불러온 새로운 형태의 참여 민주주의를 가능케 했으나 그 결과가 늘 최선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성과를 둘러싼 진위 공방이 이어진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도 군중의 ‘힘’과 ‘부조리’를 함께 경험했다. 사건 초기 맹목적 애국주의에서 발로한 ‘여론의 쏠림’ 현상은 군중 지배의 어두운 단면이었지만, 시시각각 넓어지는 정보의 외연과 전문지식의 공유는 정보화가 준 선물이었다. 그렇게 모인 정보는 세상을 투명하게 했지만, 동시에 구석구석의 혐오스러운 먼지도 들춰냈다. 망원경처럼 먼 곳을 가깝게 보여 주고, 현미경처럼 속속들이 파헤쳐 섬뜩하리만큼 사람을 발가벗겼다.

엄연한 사실은, 이 모든 일을 거치며 우리 군중이 상당한 생명공학 지식을 습득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테라토마를 검사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알게 됐고, 체세포를 난자에서 이식해 만든 복제 배아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어려운 표현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DNA 지문 분석,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 젓가락 기술, 처녀생식 같은 개념도 더듬더듬 대답할 수 있다. 그뿐이랴, PD 저널리즘이 무엇이고, 취재의 윤리는 어떠해야 하는지도 학습했고, 과학 연구에서 정부와 기업의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 이다지도 똑똑해질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서울대 연구실의 줄기세포가 천방지축 세상을 뛰어다니면서 전파한 지식은, 처음부터 모든 일이 정상적이었다면, 군중은 몰랐어도 무방한 것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교육받는 것은 불행이다. 그래서 똑똑해진 군중은 괴롭다. 이래저래 우울한 세밑, 위스키 뇌관 대신 물을 넣어 제조한다는 ‘황우석 폭탄주’나 마시면서 망년(忘年)하려는 이들을 누가 나무랄까.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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