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위조 달러

입력 2005-12-16 03:02수정 2009-10-0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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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광장에서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다. 옛 소련 전성기 때 이야기다. 신형 미사일에 이어 장갑차 행렬이 이어진다. 뒤따라 스키부대, 특수부대 등 최정예 병력이 당당하게 진군한다. 그런데 꽁무니에 초라한 행색의 기운 빠진 노인 무리가 비실거리며 따라간다. 놀란 것은 서방 기자들이다. 세상에,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력(武力)이라고 내놓다니.

▷“어찌하여 저런 맥 빠진 노숙자(露宿者) 부대가 군사적 자랑거리란 말이오?”라고 소련 당국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모르는 소리!”라고 코웃음 치며 대답한다. “저게 바로 경제학자들인데, 우리 소비에트의 비밀병기요. 저들을 뉴욕 런던 증권시장에 며칠만 풀어 놓으면 자본주의는 다 뒤집어질 테니까.” 경제학자의 들쭉날쭉 중구난방의 예측력을 비웃는 우스개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열린 주식·화폐시장’이 교란(攪亂) 공작에 약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얘기라는 설도 있다.

▷북한이 위조 달러를 대량으로 만들어 뿌린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북은 ‘외화(外貨) 벌이’와 ‘반미(反美) 고취’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달러를 위조한다. 반미 고취란 무엇인가? 엉터리 경제학자를 뉴욕에 침투시키듯이, 위조 달러를 세계시장에 뿌리면 혼란이 인다. 그러면 달러를 찍는 미국의 신용에 금이 간다는 발상이다. ‘미제(美帝)타도’를 내건 혁명의 깃발 아래서는 못 할 짓이 없는 것이다.

▷북한은 15년 전부터 수백만 달러어치나 위폐를 찍어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미국은 6자회담에서도 ‘위폐 문제’로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1달러 지폐에 ‘우리는 신(神)을 믿는다’고 적어 넣는 미국인들이니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코너에 몰린 북한의 요즘 행보는 마치 크렘린 광장의 ‘우스꽝스러운 늙은 경제학자 부대’를 연상케 한다. 굶주림에 지친 초라한 행색이나, 자본주의 시장을 교란한다는 발상이나 다 그렇다. 검증되지 않은 핵을 갖고 ‘비밀병기’라고 으스대며 흥정하는 코미디극도 어찌 그리 같기만 할까.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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