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전혁]시민단체가 왜 기업에 손 벌리나

  • 입력 2005년 11월 2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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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 영역과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 우리의 귀에 익숙한 시민단체들은 각종 민관 위원회, 공청회의 단골 초청 대상이다. 시민단체는 언론에 이어 ‘제5의 권력’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시민단체의 동의가 없는 정책이나 프로젝트는 백지화되거나 차질을 빚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시민단체의 왕성한 활동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가 국가 권력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금기시되던 국가 권력과의 연합도 서슴지 않는다는 우려다. 나아가 단체의 창립 목적과 관계없는 ‘문어발식 운동 확장’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00년 총선에서 목격한 바와 같은 시민단체연합체의 낙천낙선(落薦落選) 운동이다.

7월 환경운동연합은 스마일-1이라는 지속가능경영지수를 자체 제작하고 이를 국내 30대 기업에 적용한 약식 평가결과를 공개했다. 최근 이 단체는 각 기업에 공문을 보내 사업장 방문 실사(實査)를 통한 정식 평가와 평가비용 부담을 요구했다. 공문에는 ‘원하는 기업에 한해’라는 전제가 있었지만, 이 공문을 받은 기업은 모두 전전긍긍했다는 후문이다. 새만금, 천성산터널 사업 등 국책 사업마저 중단시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환경단체들의 요구를 칼로 무 자르듯 거부할 기업이 몇이나 될까.

시민단체의 요구에 기업들이 왜 전전긍긍하는지는 논외로 치자.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환경운동연합과 같은 환경단체 또는 시민단체가 적절한 평가 주체인가 하는 것이다. 참고로 ‘지속가능경영’이란 최근 들어 인권, 윤리, 환경, 지역사회 등 사회적 이슈가 점점 중요해지면서 기존의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책임의 조화로운 발전을 통해 기업 가치를 증진하고자 하는 새로운 ‘기업 경영의 화두(話頭)’다. 현재 이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다우존스 지속가능성지수(DJSI)를 참조하면 환경시민단체의 적절성 여부가 분명해진다. 이 지수의 산정 기준에 따르면 보편적 평가 기준이 60%를, 산업별 특성에 따른 평가 기준이 40%를 차지한다. 보편적 평가 기준 60% 중 경제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27.6%로 가장 크며, 사회 부문이 22.2%를 차지한다. 반면 환경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2%에 불과하다. DJSI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국내 A기업이 환경운동연합의 평가에서는 B등급(8개 등급 중 5등급)을 받은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여부는 시장의 평가로 빠르게 전환되는 추세다. 환경, 윤리, 인권, 소비자, 공정경쟁, 납세 및 사회공헌 등 지속가능경영에 적극적인 기업은 높은 경영 성과를 보이고 있다. 실례로 DJSI에 편입된 기업에 투자할 경우 40% 이상의 높은 투자수익을 보게 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에 따라 기업으로서는 DJSI 등의 지속가능경영지수에 편입된다는 사실이 대외 공신력과 직결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앞서 예를 든 A기업은 환경운동연합의 발표로 그동안 쌓아 온 기업 이미지에 상처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 기업은 이러한 발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사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한다는 후문이다. 피해자가 피해를 오히려 감추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귀찮아서일까, 아니면 무서워서일까.

시민단체의 영역 확대는 필연적으로 신뢰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서 신뢰성이라 함은 전문성뿐 아니라 도덕성도 포함한다. 엄밀히 말해 시민단체의 모든 활동경비는 회원들의 회비 또는 단체의 활동에 공감하는 자발적 기부로 충당돼야 한다. 전문성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환경운동연합이 기업에 평가비용을 요구했다는 것은 그 도덕성에도 스스로 흠집을 낸 격이다. 환경운동연합이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성공한 시민단체 중의 하나이기에 던지는 고언(苦言)이다.

조전혁 객원논설위원·인천대 교수·경제학 jhcho@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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