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헌주]46년만에 神社 벗어난 아버지

  • 입력 2005년 10월 20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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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이제 편히 잠드십시오.’

지난달 중순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로부터 선친(조병근)의 야스쿠니신사 합사가 취소됐다는 공문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다.

때마침 북관대첩비 반환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였다. 반환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 대사관 측 요청으로 보도 시기를 늦추었다.

2002년 1월 정부대전청사 정부기록보존소에서 ‘구 해군 군속 신상조사표’를 우연히 손에 넣었을 때 1959년 시점의 ‘야스쿠니신사 합사 완료’란 도장을 보고 얼마나 기가 막혔던가. 살아있는 사람을 40년이 넘도록 제멋대로 합사해 놓다니…. 기록이 있었는데도 모르고 지내 왔다는 충격이 더 컸다.

관련 부처에 ‘유족에게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말을 전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놀랍게도 담당 부처가 없었다. 외무부는 행정자치부로, 행정자치부는 각 시도에 관련 업무를 넘겼다고 했다. 그러나 도청은 자료가 없다고만 했다. 허탕이었다. ‘대체 이것도 정부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2002년 가을 도쿄특파원으로 부임할 당시 선친은 치매에다 기력조차 쇠해 누워 있었을 뿐, 아들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다. 해외근무 중 무슨 일이 나려니 하는 생각에 차마 일어서지 못하고 눈물을 훔쳐야 했다. 각오했던 대로 2003년 말 별세했고 임종은 하지 못했다.

도쿄 부임 후도 야스쿠니신사를 뇌리에서 지운 일이 없었다. 살던 집도 가까운데 있어 저녁 산책도 신사 근처를 가곤 했다. 별세 후 선친이 그리워질 때도 발길은 그곳으로 가 닿았다.

예닐곱 살 때부터 사랑방에서 남태평양에서 벌어진 참혹했던 전쟁 이야기를 선친에게 익히 들어서였을까. 태평양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오키나와 격전지로, 징용자의 한이 서린 후쿠오카 탄광으로, 히로시마 원폭 피해 현장으로, 시마네 현은 독도 문제로 취재를 다녔다.

명단 삭제의 자세한 경위는 외교 문제도 있어 쓸 수 없다. 하지만 기자는 이 문제를 결코 한 개인의 한(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마음속에 아직 태평양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적어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한국인 2만여 명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한, 일본이 부끄러운 제국주의 유산을 청산하지 않는 한….

조헌주 도쿄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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