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60엔 어떻게 사나]1부<2>자식에게 기대지 말라

  • 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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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살 먹은 맏아들은 예술 한답시고 취직도 안 하고 지금도 용돈을 타갑니다. 둘째 아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고시를 준비하다가 서른을 넘겼어요. 자식들에게 의지할 생각은 아예 접었습니다.” 대구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다 외환위기 때 사업을 접은 박모(62) 씨는 노후를 생각하면 착잡하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았지만 자식들 뒷바라지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현재 남은 재산은 1억5000만 원짜리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와 예금 및 적금 1700만 원뿐.

“애들에게 쓴 돈 절반만 떼어 연금에라도 넣어 둘 걸.” 박 씨의 때늦은 후회다.》

○ 나의 노후, 나만이 책임질 수 있다

“유럽에서는 젊었을 때 어떤 연금 상품을 골라 얼마나 돈을 넣어 두느냐에 따라 은퇴 후 고급 실버타운에서 살기도 하고 겨울에 난방이 안 되는 집에서 떨기도 합니다. 월급에서 제일 먼저 각종 연금이 빠져나가고 자녀 교육비는 그 다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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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영국에서 생활한 노태정(盧泰正·경영학) 우송대 교수는 선진국 국민의 노후 준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자식이 ‘투자 1순위’다. 부모들은 자식 교육만 제대로 하면 노후는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요즘 30, 40대 사이에서는 “우리가 부모에게 용돈 드리는 마지막 세대”라는 말이 나온다. 자식에게 노후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노인 수는 늘어나 작년에는 경제활동인구 10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030년에는 2.8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한다. 노인을 부양하는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재 30, 40대의 노후 준비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숙희(崔淑姬) 수석연구원은 “젊을 때부터 연금이나 주식 간접투자상품 등에 자산을 적절히 안배해 스스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노후생활 기초는 연금으로

“매달 국민연금 뜯기고 나면 정말 화난다니까. 2047년에는 기금이 바닥나서 한 푼도 못 받게 된다며….”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주부 김희정(37) 씨는 동네 주부들과 재테크 얘기를 하다가 이런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문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다 2년 전 퇴직한 김 씨는 국민연금을 중단하지 않고 임의 가입자로 전환해 매달 내고 있다. 회사가 내던 몫까지 본인이 내야 하므로 불입액은 갑절로 늘어나 월 32만4000원. 이렇게 돈을 부어 65세 이후 받을 연금은 현재 가치로 매달 120만 원 정도다.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기 때문에 개인연금보다 수익성이 높더라고요. 보험회사보다는 나라가 망할 가능성이 적지 않겠어요?”

국민연금연구원 김성숙(金聖淑) 선임연구위원은 “제도가 바뀌어 혜택이 다소 줄더라도 국민연금이 보통 사람들의 노후생활에 기초가 된다는 점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의사 정모(43) 씨는 지난해 말 아버지(80)가 생활비를 올려 달라고 ‘독촉’하자 개인연금에 가입했다. 연금에 가입하면 최소한 나중에 자식에게 손 벌릴 일은 없으리라는 게 정 씨의 생각이다.

그는 월수입 2000만 원 중 600만 원을 보험회사의 개인연금에 넣는다. 60세부터 월 400만 원씩 사망 전까지 받는 ‘확정형 연금보험’에 월 300만 원, 투자 실적에 따라 수령액이 달라지는 ‘변액보험’에 300만 원이 들어간다.

올해에는 1953년 도입된 퇴직금 제도도 52년 만에 바뀐다. 12월부터 퇴직연금제가 도입돼 각 기업의 노사 합의에 따라 매달 일정액을 붓다가 나중에 연금 형태로 지급받는 퇴직연금제를 선택할지, 아니면 기존 퇴직금제를 유지할지 결정하게 된다.

○ 내 연금 얼마나 될까

27세에 B대기업에 입사한 강모(35) 대리가 노후에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얼마나 될까.

매달 16만2000원씩 국민연금을 내는 강 대리가 55세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국민연금을 부으면 65세부터 현재 가치로 월 108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그가 보험사의 개인연금 상품에 가입해 매달 50만 원씩 20년간 부으면 60세부터 현재 가치로 매달 23만5000원을 받을 수 있다. 받을 돈이 내는 돈보다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20년 후의 월 불입액 50만 원은 현재 가치로 몇 만 원밖에 안 되는 금액이다.

12월 시작되는 퇴직연금에 ‘확정 급여형’으로 가입하면 55세까지 회사를 다닌 뒤 퇴직하는 때부터 매달 13만8000원을 받을 수 있다. 주식 등에 투자해 실적에 따라 받는 ‘확정 기여형’을 선택하면 이보다 많거나 적어질 수 있다.

결국 강 대리가 65세에 받을 연금 소득은 현재 가치로 월 145만3000원 정도. 집 한 채를 가진 노인이 혼자 생활할 만하지만 부부가 같이 살기엔 다소 부족하다.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강창희(姜敞熙) 소장은 “선진국에서는 노인 소득 가운데 연금 비중이 70% 정도”라며 “연금으로 노후생활 기반을 확보해 두고 별도로 주식 간접투자상품 등에 투자해야 은퇴 후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내 몫은 남아있을까” 국내 연금제 문제점▼

한국의 연금체계는 ‘공적(公的) 연금’이 주춧돌이 되고 퇴직연금이 허리가 되며 개인연금으로 보완하는 선진국형 ‘3층 연금제도’를 모델로 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연금이 가입자인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 1988년 처음 도입할 때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조금 내고 많이 받는 ‘장밋빛 구조’로 짰기 때문이다.

정부도 지금 상태로는 2047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에 따라 보험료율을 현재 소득의 9%에서 단계적으로 15.9%까지 올리고 연금 지급액은 ‘생애 평균 소득’의 60%에서 50%로 낮추는 내용의 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문형표(文亨杓) 선임연구위원은 “연금기금 고갈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이 국민들 사이에 확산돼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노인들의 기본생활을 책임져야 할 국민연금을 서둘러 개혁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보다 지급 비율이 높은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 교직원연금은 더 불안정한 상황이다.

공무원연금은 2001년부터 보험료율(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부담분 포함)이 15%에서 17%로 높아졌지만 매년 재원이 부족해 정부 재정에서 보조를 받고 있다.

올해 12월 도입되는 퇴직연금제도가 활성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중소기업주는 자금 문제 때문에 가입을 꺼리고 대기업 노사는 기존 퇴직금제보다 크게 득이 될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연금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내년부터 연금에 대한 소득공제가 연간 24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늘어나지만 이 정도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얘기다.

조흥은행 강북PB센터 서춘수(徐春洙) 지점장의 계산에 따르면 내년 연말정산 때 연금 가입자들이 추가로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과세표준에 따라 5만3000∼23만1000원에 불과하다.

서 지점장은 “정부가 정말로 연금제도를 활성화하려는 뜻이 있다면 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크게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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