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대근/‘남북단일팀’ 겉과 속

  • 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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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괴로운 건 며느리들만이 아니다. 운동선수들에게도 명절은 고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가족 친지를 만나는 그 시간에도 선수들은 경기에 나서고, 또 훈련을 한다. 올 설 연휴에 중국에선 지난해 아테네 올림픽 여자다이빙 2관왕인 궈징징(郭晶晶)이 사흘간 특별휴가를 받은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화통신’이 이를 보도했을 정도다.

우리 대표선수들도 다르지 않다. 이번 추석에도 레슬링 역도 등 8개 종목 선수들은 연휴를 반납하고 태릉선수촌에서 땀을 흘렸다. 하지만 훈련 분위기가 여느 때와는 달랐다고 한다. 아무리 결의를 다진다고 해도, 명절 훈련은 심란할 수밖에 없는 데다 ‘남북단일팀 구성’ 소식이 선수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남북단일팀은 선수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다. 남북 배분(配分) 원칙이 정해지면 경기력과 상관없이 출전 기회를 잃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다. 아시아경기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그래서 연금도 타고 병역문제도 해결하리라는 인생 설계가 흔들리는 일이다. 내년 12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에 단일팀을 파견키로 남북이 합의했다는 8일 대한체육회의 발표에 선수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단일팀의 의미는 크다. 국제종합대회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남북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시작으로 국제종합대회가 있을 때마다 단일팀 구성 문제를 협의했지만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는 단일팀의 호칭, 단기(團旗), 단가(團歌), 선수 선발 원칙 등에 합의하고도 양측이 어떻게 실행을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닥쳐 막판에 회담이 깨졌다.

이번에도 문제는 성사 가능성이다. 유감스럽게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는 표현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원칙적인 합의’는 그동안 수없이 되풀이된,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말이다. 더구나 합의서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덕담(德談) 수준이다. 북측의 문재덕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조차 “그동안 소란만 떨다 안 된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우리 측이 치밀하게 준비를 해 온 것 같지도 않다. 실무추진팀도 없다. 이제부터 각 경기단체의 의견을 들어볼 계획이라는 막연한 얘기뿐이다.

그런데도 김정길 체육회장이 서둘러 ‘단일팀 합의’를 발표한 것은 최근의 남북교류 분위기를 의식한 정치적 행보로 읽힌다.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을 지낸 그는 올 2월 체육회장에 당선된 뒤 “상반기 중 북한에 가서 2008 베이징 올림픽 단일팀 구성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적 배경을 과시하듯 “대통령 특사로 북한 당국자를 만나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북한에 간 적도, 특사로 나선 적도 없다.

스포츠 교류가 상대적으로 쉬운 분야라고 하지만, 남북 관계에서 조급증은 금물이다. 남북 교류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듯한 ‘이벤트성 발표’는 우리 선수들을 심란하게 만들 뿐이다. 비가 새는 국가대표 훈련장은 놔두고 단일팀 운운하는 건 옳은 순서가 아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태릉선수촌장도 “예산을 따기 위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해야 할 참”이라고 말했겠는가.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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