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3년 라면 첫 생산

  • 입력 2005년 9월 15일 0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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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옆에서 먹고 있으면 나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식품이 라면이다. 쫄깃쫄깃한 면발을 먹고 난 뒤 매콤한 국물을 훌훌 마시고 나면 속이 시원하게 풀린다. 특히 외국여행 중 우리나라 항공기 안에서 먹는 라면 맛은 바로 고국의 맛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1958년 일본 닛신(日淸)식품이 국수 가락에 양념을 첨가한 뒤 말린 건조면을 시판하기 시작한 것이 라면 역사의 시작이었다.

국내에 라면이 본격 보급된 것은 1963년 9월 15일 삼양식품이 하루 5만 개씩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올해 87세인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이 당시 일본 묘조(明星)식품에서 기계 2대와 기술을 도입해 라면을 만들었다. 초창기 삼양라면은 주황색 포장지에 중량 100g, 가격은 10원이었다. 자장면 한 그릇이 20∼30원, 식당에서 찌개가 3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꽤 ‘고급음식’이었던 셈이다. 당시 삼양라면의 광고는 ‘즉석국수 삼양라면’이었다.

그 뒤 삼양라면은 라면의 대명사로 1970, 80년대 경제성장기에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명성을 날렸다. 라면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다른 기업들도 속속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졌다. 삼양라면은 1988년 라면시장 점유율 60%를 넘어섰고 매출액 5000억 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1989년 우지(牛脂)파동이 터지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었다. 검찰이 라면 원료로 사용하는 쇠기름을 공업용 우지에서 추출했다고 발표했던 것. 사건 발생 13일 만에 당시 보사부 장관이 나서 무해 판결을 내려 불을 껐지만 삼양라면은 타격을 입고 60%의 시장점유율이 10%대로 내려앉았다.

이때 삼양식품을 제치고 라면시장을 장악해 나간 게 농심이었다. 농심은 안성탕면 사발면 등을 내놓은 데 이어 1986년 신(辛)라면을 히트시켰다. 160여 종의 제품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오늘날에도 신라면은 연간 3000억 원어치가 팔리며 25%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독보적 존재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존폐 위기로까지 내몰렸던 삼양식품은 올 3월 말 화의를 마치고 낡은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바꾸는 등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라면 종가(宗家)의 자존심이 어떻게 살아날지 관심거리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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