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情報는 國力이다

  • 입력 2005년 9월 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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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궤멸시키고 해양 패권을 장악해 ‘해가 지지 않는 제국’ 건설의 초석을 놓은 엘리자베스1세(1533∼1603) 여왕 시절. 영국이 국가적으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정보력 강화였다. 그 결과가 ‘007 영화’로 유명한 MI6의 모태(母胎)인 비밀첩보조직이다. 조직요원들은 유럽 각국 궁정(宮廷)에 침투해 1588년 무적함대와의 결전에 앞서 스페인 해군의 동정을 손바닥 보듯 파악해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대영제국 건설의 비결 중 하나는 정보력이었다.(나카니시 데루마사, ‘대영제국 쇠망사’)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나 이스라엘의 모사드를 비롯한 서방세계의 대부분 대외(對外)정보기관은 이처럼 국가적 목적에서 설립됐다.

간혹 스캔들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정보기관에 대한 기본적 신뢰는 크다. 시리아 권력 핵심부에 침투해 소련의 무기 지원 상황과 골란고원의 시리아군 배치 정보를 입수해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승리에 기여했던 모사드 요원 엘리 코헨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그가 1965년 체포돼 처형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국가추도일을 선포했다.

반면 국가정보원의 전신(前身)인 중앙정보부는 5·16군사정변 직후 창설된 경위부터 다소 달랐다. 집권 기반이 취약했던 혁명세력으로서는 ‘반(反)혁명’ 움직임의 차단이 최우선 목표였다. 또 아직 관료체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개발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동원(動員)체제 구축도 주요 기능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외국 학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성과는 상당 부분 중정의 정책 모니터링과 조율 기능 덕택”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아무튼 우리 정보기관은 대통령의 ‘눈과 귀’ 역할을 하며 국가운영체제의 한 축(軸)으로 기능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도청 파문 등 정보기관의 역(逆)기능이 불거지면서 우리의 정보역량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DJ 정부 들어 벌어진 ‘북풍(北風) 수사’로 중국 내 대북정보망이 붕괴되고 햇볕정책 추진으로 미일과의 정보공유 체제가 무너진 것은 결정적이라는 평가다. 국정원의 한 전직 간부는 “YS 시절만 해도 대북 정보는 우리가 우위에 있었으나 정보망이 붕괴되고, DJ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대해 ‘예측불가능하다(unpredictable)’는 평가가 생기면서 미일과의 정보협력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토로했다. 최근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한국과의 정보 공유 불가’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정보기관이 ‘정치 사찰’을 위해 저지른 도청 등 불법행위는 재발되지 않도록 엄중 처벌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기구 축소 등 역대 정권의 대증요법식 대응이 ‘정보력 약화’와 ‘국정운영시스템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교훈이다.

이런 점에서 마녀사냥식 대응이 아닌, 정보기관의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에 대한 국가전략적 청사진에 기초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국정원의 모토처럼 ‘정보는 국력’이기 때문이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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