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도청 정국에서 본말을 뒤집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도청이 행해졌다는 국가정보원의 발표가 있은 뒤 DJ가 급작스레 입원하고 호남 민심이 들끓자 노 대통령부터 말을 바꿨다. 노 대통령은 7월 말 국정원의 보고를 받은 뒤 발표 지시와 함께 철저한 진상규명을 다짐해 놓고, 18일 중앙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선 “국정원 발표의 의미가 확대 해석돼 당황스럽다”고 물러섰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DJ가 ‘마음의 병’을 얻었다는 얘기가 나오자 당 수뇌부가 모두 진사(陳謝) 사절로 나섰다. 전 대변인은 “DJ를 훼손해서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가 얻을 게 무엇이 있나”라는 말도 했다. 문제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국정원에 화살을 돌리는 듯한 이런 태도가 검찰의 도청사건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 국정원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곧 전직 국정원장과 차장 등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맞서 DJ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사람들이 결백을 주장하는 회견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판에 여당의 대변인이 “DJ 정부의 업적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적절치 못하다. 전(前) 정권의 업적을 가리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과(功過)를 가리자는 것이다. 눈치보기식 허물 덮기는 공마저 훼손하는 일이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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