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유출 3인방’ 누군가는 거짓말

  • 입력 2005년 7월 28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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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도청팀장 사무실 압수수색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3동에 있는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 씨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서류 등을 옮기고 있다. 원대연 기자
前 도청팀장 사무실 압수수색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3동에 있는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 씨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서류 등을 옮기고 있다. 원대연 기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도청 테이프를 유출한 재미교포 박모(58) 씨를 전 미림팀장 공운영(58) 씨에게 소개해 준 전 국정원 직원 임모(58) 씨는 27일 “공 씨가 먼저 삼성그룹 임원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임 씨는 이날 본보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국정원에서 직권면직되고 보직 대기 중이던 1998년 4월 공 씨가 ‘삼성 임원 중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면서 “몇 개월 뒤 군대 동기에게서 박 씨를 소개받고 박 씨와 공 씨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말했다.

공 씨는 임 씨의 소개로 박 씨를 알게 됐으며, 공 씨가 안기부에서 갖고 나온 도청 테이프는 박 씨를 통해 MBC에 넘겨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박 씨를 어떻게 알게 됐나.

“공 씨의 부탁을 받은 몇 달 뒤 군대 동기를 만나 재미교포 사업가가 삼성 임원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정권 실세와도 친하다고 하더라. 공 씨에게 ‘내 친구가 삼성 임원에 대해서 잘 안다’고 했더니 소개해 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1998년 말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 앞 다방에서 3명이 함께 만났다.”

―어떤 얘기를 나눴나.

“공 씨가 좀 비켜 달라고 해 따로 떨어져 앉아 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른다. 박 씨는 모임이 끝난 후 개인적으로 친한 변호사를 찾아간다며 사라졌다.”

―삼성과 박 씨 간에 거래가 있었다는데….

“그때부터 6개월 정도 지난 뒤 박 씨와 삼성 간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엔 무슨 문제였는지 몰랐다. 공 씨가 ‘급하니 박 씨를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해 서울 롯데호텔 옆 커피숍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줬다. 이때도 따로 떨어져 앉았는데 둘 사이에 약간 언쟁이 벌어지는 것 같았지만 나올 때는 같이 웃더라.”

―박 씨의 아들이 찾아왔다고 하던데….

“올해 3월 말∼4월 초 박 씨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아내로부터 들었다. 문을 닫으려 하자 ‘어떻게 나를 문전박대 하느냐. 후회할 것이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는 것이다. 공 씨에게 박 씨의 아들이 왔다 갔다고 하자 그는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냐’며 버럭 화를 냈다. ‘박 씨의 아들’이라던 사람이 MBC 이상호 기자라는 사실은 나중에 TV를 본 아내가 말해줬다.”

―국정원 조사를 받았나.

“오늘도 국정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내가 관여한 일이 아니어서 조사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실 1, 2주 전에 국정원 직원들이 찾아와 삼성 관련 테이프를 내가 갖고 있는지 조사하겠다고 했다. 공 씨가 ‘삼성 관련자료를 임 씨에게 건넸다’고 진술했다고 하기에 공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공 씨 집으로 같이 가자고 하자 잠시 후 ‘공 씨가 자료를 주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했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

―이후 공 씨와는 연락을 하지 않았나.

“‘이렇게 친구를 잃는구나’ 배신감을 느꼈다. 그런데 며칠 뒤 공 씨가 전화로 ‘미안하다. 국정원 직원들이 내 말과 달리 당신이 테이프를 갖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더라.”

―공 씨와는 어떤 사이인가.

“같은 국에 근무한 적이 있고 나이가 같아 친하게 지냈다. 공 씨가 A통신에서 하청 받은 지사를 차렸으니 놀러 오라고 해 면직 후에도 계속 만났으며 면직취소 소송도 함께 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삼성 협박’ 주동자 孔인가 朴인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특수도청 업무를 담당한 공운영 전 미림팀장, 이른바 ‘X파일’을 MBC에 유출한 박모 씨, 두 사람을 연결해 준 전 국정원 직원 임모 씨.

58세 동갑내기인 세 사람은 도청 자료 유출 경위, 삼성과의 거래 문제, 정치권 실세와의 관계에 대해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 첫째, 도청 자료가 유출된 경위가 불확실하다.

공 씨는 임 씨가 먼저 박 씨를 소개했으며 박 씨의 사업을 돕기 위해 도청 자료를 잠시 빌려줬다고 자술서에서 밝혔다.

반면 임 씨는 “공 씨가 먼저 ‘삼성 임원 중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와 우연히 군대 동기를 통해 삼성에 인맥이 있다는 박 씨를 알게 돼 소개해 줬다”고 말했다.

박 씨는 “공 씨와 임 씨가 복직에 힘써 달라며 (도청) 자료를 줬다”고 주장했다.

둘째, 박 씨와 삼성의 거래에 대한 설명이 다르다.

공 씨는 박 씨와 삼성 간에 협상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 씨에게서 자료를 돌려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몇 개월 뒤 국정원 후배를 통해 관련 소문을 듣고 확인해 보니 박 씨가 다시 삼성 측을 협박하고 있어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했다고 공 씨는 밝혔다.

임 씨는 “박 씨와 삼성 간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한 반면 박 씨는 “삼성을 찾아간 적은 있지만 돈을 요구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셋째,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의 관계도 의문.

공 씨는 임 씨에게서 “박 씨가 박 전 장관과 돈독한 관계”라는 말을 들었다고 자술서에서 언급했다.

임 씨도 “박씨가 당시 정권실세와 친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1999년 공 씨 등 미림팀과 함께 홍석현(洪錫炫)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李鶴洙)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들고 박 장관의 집무실을 찾아간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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