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유환]서울-평양에 연락사무소 열자

  • 입력 2005년 6월 20일 02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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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북공동선언 발표 5주년을 기념하는 평양 통일대축전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극적인 면담이 이뤄졌다. 지도자 중심의 ‘유일체제’라는 북한체제의 특성상 김 위원장이 정 장관을 만난 것은 북한 내부적으로 남북관계 원상회복과 북핵 해결의 큰 방향을 잡은 것을 시사한다. 이로써 정체됐던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위기국면을 대화국면으로 바꾸는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핵문제와 관련해서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주장하고, 미국이 북한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뜻이 확고하다면 7월 중에라도 6자회담에 복귀할 것임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핵문제가 해결되면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검증을 받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는 남북한과 미국이 모두 같은데 이를 실현하는 방법이 다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불량국가’인 북한이 먼저 핵을 버리고 불량하지 않음을 입증해야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니,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안전을 보장하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면담이 갖는 대미 메시지는 미국이 북한 지도자와 체제를 인정하고 공존에 기초한 협상을 하면 핵을 버리고 개혁·개방을 본격화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북한에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 북한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상국가’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무조건 회담복귀를 요구하는 미국이 김 위원장의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가 여부다. “또 하나의 북한의 수사일 뿐”이라며 김 위원장의 발언을 일축하고 ‘리비아 방식의 선 핵폐기’ 입장을 고수할 경우 북핵 해결의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면담에서 나타난 남북관계와 관련한 김 위원장의 생각은 6·15선언 5주년을 맞아 남북공동선언의 정신과 내용을 되살려서 남북관계를 원상회복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대북송금 특검, 조문 불허, 대규모 탈북자 입국 등을 문제 삼아 남북관계를 정체시켰다. 하지만 내부자원이 고갈된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은 실무회담에서 이미 합의한 장관급회담 재개와 함께, 이산가족 상봉사업 등 인도적인 문제 해결과 장성급 군사회담의 재개를 통한 초보적 수준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추진하면서 경제난 해소를 위한 남측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남북공존을 합의한 6·15선언 5주년을 맞아 다시 남북관계 정상화를 이루기까지 남과 북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상대를 부정해야 자기 정체성이 있었던 적대관계에서 상생의 공존관계로 남북관계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에서 신구(新舊) 패러다임 간의 갈등도 있었다. 북한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주체의 논리’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있어 정체성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남북화해시대 남남갈등’이란 역설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래서 6·15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정세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해 왔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세변화와 관계없이 남북관계 발전을 꾸준히 제도화해 나가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구도가 정착돼야 외세의 개입을 줄일 수 있다. 이미 남북경협 부문에는 상당한 수준의 제도화가 이뤄졌다. 서울과 평양 또는 개성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남과 북이 상시적인 의사소통로를 갖는다면 남북관계 정상화를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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