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야치 발언’ 대응이 보여준 外交 현주소

  • 입력 2005년 5월 2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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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對北)정보 공유에 난색을 표시한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차관의 발언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일 간 외교 갈등은 한국 외교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묻게 한다.

어제 ‘유감’을 표명했지만 야치 차관의 당초 발언에는 ‘한국 정부가 한미일의 대북공조 대열에서 이탈하려 한다는 인식과 이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10일 야치 차관을 만난 우리 국회의원들의 말대로 그가 ‘작심하고’ 발언한 것이라면 미국의 ‘대한(對韓) 불신’과 미일의 ‘한국 따돌리기’가 진실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물론 미국까지 끌어들인 야치 차관의 발언은 ‘외교적 무례’다. 발언 내용이 한국 언론에 보도된 직후 그가 “내용이 새나간 것 자체가 문제”라며 적반하장(賊反荷杖)식으로 불쾌감을 보인 것은 무책임하다. 일본의 이런 태도에는 한국에 대해 ‘강압적 외교’를 구사하려는 행태도 엿보인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대응도 결코 적절치 못했다. 외교통상부는 이미 11일 야치 차관의 발언 내용을 보고받은 직후 주한 일본공사를 불러 항의했고, 주일 대사관을 통해 일본 측에 유감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청와대에도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치 차관의 발언이 있은 지 보름이나 경과한 25일 국내 언론에 발언 내용이 보도됐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뒤늦게 야치 차관의 문책을 요구하는 초강경 대응을 주도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그의 발언을 ‘주제넘은 일’ ‘무책임한 언동’ 등의 용어를 동원해 비판한 것이나 ‘한일정상회담 재고(再考) 가능성’을 흘린 것도 외교적 상궤(常軌)에서 벗어난 일이다.

청와대의 강경기류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혹시 이런 강경자세의 배경에 외교를 국내 정치게임의 연장으로 보는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언도 1997년 외환위기 때 일본이 한국에 대한 지원에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데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 관련자들의 증언이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앞장서서 ‘퇴로를 차단하는’ 식의 강경외교를 펼치는 것은 후유증을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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