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태규]‘유산기부’ 풍요한 사회 만든다

  • 입력 2005년 3월 28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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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중매체에 오르내린 사회문제 중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했던 것은 상속재산을 놓고 형제와 부모 자식 사이에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사건들이었다. 또한 거액의 상속재산을 남기고 타계한 기부자의 기증서를 놓고 친척들과 기부 의사가 전해졌던 대학 간에 일어났던 법정소송도 우리 사회의 유산 기부를 둘러싼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유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자는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어 건전한 유산기부문화에 대한 희망을 주고 있다. 누구든지 평생 땀 흘려 모은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를 위해 기부한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자식이, 또 그 자손들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발 물러서 생각해 보면 유산의 사회 환원이야말로 자식을 위한 일인 동시에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산의 기부를 통해 교육 문화 사회복지 의료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필요로 하는 공익 사업을 지원하게 되고 우리 자손 모두가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와 자식을 위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찍이 미국의 대부호였던 카네기는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일은 최선을 다해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에 자식을 위한 일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미국 의회에서 심각히 논의되고 있는 상속세 폐지 법안에 대해 빌 게이츠를 비롯한 많은 유수한 재산가들이 비영리공익단체들과 더불어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 또한 유산상속이 자식에게, 그리고 유산 기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사회의 지도층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유산을 자식보다는 사회에 상속하려는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우선 개인의 기부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아직까지는 한국의 민간 기부는 대부분 개인보다는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 기부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를 위해 남기려는 유산기부문화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추정에 따르면 민간의 기부가 가장 활성화된 미국에서 2003년 총 240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이 민간 기부를 통해 조성되었고, 이 중 8%가 유산 기부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유산 기부가 기업 기부의 두 배에 이르고 있다.

전 가계의 87%가 기부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산 기부를 포함한 개인의 기부가 전체 민간기부의 84%를 차지하는 것을 볼 때 개인기부문화의 확산이 유산 기부의 문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산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상속과 관련한 법과 세제 측면에서의 지원도 중요하다.

2000만 달러 이상의 유산상속을 받는 미국 최상위 계층이 상속재산의 20%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상속세제가 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상속세제의 엄중한 집행과 관리 역시 우리 사회에서 부유층의 유산 기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유산으로 민간재단 등 다양한 경로를 이용한 공익활동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유산 기부 못지않게 그 역할을 인정해 주려는 사회의 긍정적 시각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상속재산의 사회 환원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미국 사회의 태도가 부유층이 유산 기부를 포함한 기부 활동에 앞장서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유산기부문화 정착에 중요하게 참고해야 할 점이다.

박태규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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