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주성]경제수장 제1조건은 ‘균형감각’

  • 입력 2005년 3월 8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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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던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물러났다. 오랜 침체 끝에 경기가 풀리는 기미를 보이는 시점에 경제 수장이 교체된다는 것은 즐거운 소식이 아니다. 특히 이 전 부총리는 나름대로 시장의 신뢰를 받았고, 청와대의 개혁세력과 일정 부분 대립 각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비중과 영향력이 작지 않았던 인물이다.

경제부총리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정책 결정과 집행의 중심에 서기 때문에 그 어떤 정부 직책보다도 균형감각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 모험을 택하기에 앞서 경제에 존재하는 위험을 정책수단을 통해 흡수하고 상쇄시킬 수 있는 식견과 능력부터 갖추어야 한다. 어떤 사람을 믿음직하다고 느끼는 것은 잘나갈 때가 아니라 어려울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역량이 돋보이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관성 없는 정책이나 말이 앞서는 고위 공직자 때문에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신뢰가 깨지는 사례를 수없이 보아 왔다.

듬직한 경제 수장이 되려면 무엇보다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과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귀와 최선의 정책조합을 개발할 수 있는 머리를 고루 갖추어야 한다. 이런 차원의 균형과 경륜은 단순히 학식이 높다고, 경험이 많다고 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편안한 연구실 의자에서 책임질 일 없는 얘기만 하던 학자나 숨 막히는 조직논리 속에서 잔뼈가 굵은 관료 중 경제 전반에 상존하는 위험을 조절하며 동시에 개방과 경쟁의 시대에 걸맞은 성장정책을 구상할 균형감각 있는 전략가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대안이 없다면 차라리 어느 정도의 업무파악과 함께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의 보유 여부에 인선의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

개각 때만 되면 목을 길쭉이 빼고 다니는 사람들보다 묵묵히 제 할일을 하면서도 이론과 현실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는 조용한 재사들이 해답일 수 있다. 경륜은 머리의 무게와 가슴의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지 마당발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제갈공명이 유비나 조조에게 줄 서려 하거나 가욋일에 바빴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학자 관료 정치인 기업인 식으로 직종에 따라 인물을 정형화하지 말고 어떤 경험을 가졌건 좀 제대로 된 사람이 경제 수장 자리에 앉았으면 한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 경제는 미래의 성장을 이끌어갈 생산자본, 인적자원, 기술혁신 모두에서 빨간 불이 켜졌다. 금융시장은 여전히 투자자금 중개와 위험 흡수라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교육과 노동시장은 성장 동력의 축이 아니라 그 자체가 문제로 전락했다. 정부와 재벌의 다툼은 여전한데 외국자본까지 끼어들어 삼파전을 벌이고 있다. 제대로 된 중소기업은 환율에 고전하고 은행에서 박대 받는데, 벌써 망했어야 할 기업에는 정부 지원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 살아나는 듯 보이는 경기는 미뤄뒀던 소비와 투자가 유발하는 기술적, 순환적 반등의 성격이 강하다. 경제구조의 개선이 없는 한 약간의 외부충격에도 다시 흔들릴 수 있다. 적절한 재정확대는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 경제를 부흥시킬 수는 없다. 누가 부총리가 되건 위험을 유발하고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앞서야 한다. 정치계절도 다가오는데 행여나 단기부양에 능숙한 ‘언 발에 오줌 누기’ 선수가 등장하지 않을까 두렵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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