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한강의 기적’

  • 입력 2005년 2월 22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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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이란 말은 쓰임새도 많다. 며칠 전 한 모임에서도 그 말을 들었다. 50대인데도 아직 직장에서 건재(健在)하거나 나름대로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것이다. 모두 한바탕 웃었지만 사실 슬픈 얘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50세 넘어서까지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것은 축복이다. 50대의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고 재취업도 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제 악화에 따른 기업의 구조조정 칼바람에 50대가 가장 먼저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사회 분위기도 급속하게 젊어져 정계, 재계, 공직 등 여러 분야에서 50대의 퇴조가 눈에 보인다. 얼마 전에는 45세 전후 직장인들이 올해 대규모 구조조정의 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으스스한 보고서까지 나왔다.

20대의 청년실업에 50대의 대량 실직까지 겹친 우리 사회의 이 거대한 고용 불안은 경기적 요인, 구조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정부, 기업, 노조, 근로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 탓을 떠나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조직을 옮기거나 독립해 홀로 시장으로 나가기 위해 스스로 실력을 기르는 50대도 많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 ‘몸값’ 높이기 전선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Y 씨(51)는 건설회사 전무를 하다가 최근 창업을 했다.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마당에 하루라도 빨리 자기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남이 안하는 낯선 분야를 찾아 국내외의 창업 정보를 수도 없이 뒤지고 발품을 팔았다. 결국 실내 스카이다이빙 설비를 수입해 전국에 공급해주는 일을 하기로 했다. 벌써 여기저기서 문의가 오는 등 출발이 좋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S 씨(52)는 K대 경영학과 수시전형에 합격해 다음달부터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젊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경쟁할 일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요즘에는 1학기에 배울 교재들을 예습하느라 바쁘다.

한의대에 다니기 위해 아예 직장을 그만둔 50대도 보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야간 대학원이나 외국어학원, 자동차정비학원 등에 다니는 50대도 적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에 대한 적극성과 자신만의 주력상품을 만들어내려는 자기계발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77세인 지금 50대는 한창 나이다. ‘50 청년’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아들딸 공부 시키고 결혼도 시켜야 되는 등 할 일이 많다. 이런 나이에 세상의 무대에서 내려서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1960, 70년대 한국의 경제를 부흥시킨 ‘한강의 기적’은 정부와 기업, 근로자가 한마음으로 뭉쳐 일한 결과다. 우리의 저력이고 자랑이다. 그러나 50대가 일자리를 갖는 것이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이 돼서는 안 된다. 일하고 싶은 사람이 일자리를 갖는 것은 ‘한강의 일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특히 50대 개인의 의지와 모색, 도전이 중요하다. 한국의 50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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