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홍국선]특허사냥꾼 한국에 몰린다

  • 입력 2005년 2월 18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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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과학계가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적지 않게 내고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 수준이 이제 국제무대에서 전혀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정부도 연구개발(R&D) 비중을 높여 나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 과학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더라도 그것이 산업이나 생활에 응용되지 않으면 문제다. 우리나라 대학들에 상업화할 만한 연구 성과가 얼마나 있는지조차 정확하게 파악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외국에서 우리의 성과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해 가을 서울대 공대의 박 모 교수는 일본의 한 화학회사에서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논문 검색을 통해 박 교수가 고분자 신소재 기술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특허를 사겠다고 연락해 온 것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우수한 논문을 많이 쓰긴 했지만 특허를 낸 일은 없었다. 그는 연구 성과를 논문으로 발표하는 데 만족했다. 논문과 달리 특허는 교수 실적평가에 반영되지 않는 데다 연구에도 모자라는 돈을 특허비용에 쓸 수는 없었다. 선진국에 특허를 출원하고 등록하는 데는 최소 1000만 원이 필요하다.

박 교수는 고민 끝에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을 찾았다. 특허와 관련된 일을 대행해 주는 재단이 생겼다고 들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재단은 그를 대신해 그 일본 회사와 협상을 벌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일단 박 교수의 연구 실적을 보여 주면 일본 회사가 그 중에서 ‘특허감’을 찾아내 등록키로 했다. 물론 특허 출원과 등록에 드는 모든 경비는 일본 회사가 부담하고 명의는 서울대와 공동 소유로 하며 특허로 인한 수익은 반분하기로 했다.

박 교수의 연구 결과를 검토한 일본 회사는 우수한 기술들에 혀를 내둘렀고, 그 뒤 박 교수와 새로운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고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전국의 이공계 대학에는 이렇게 ‘성공 잠재력’이 큰 학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연구 개발도 중요하지만 ‘있는 것’을 잘 활용하면 막대한 부가가치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2003년 5월 제정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재 전국 국공립대학에는 산학협력단이 설립돼 있다. 과학자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유망기술 발굴부터 특허 획득 및 기술이전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정처리와 협상업무를 대행하는 게 주요 임무다.

하지만 현재 국내의 산학협력재단은 인력과 재원이 충분하지 못한 탓에 외국 기업과의 협상에서 좀더 유리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기술이전 전문회사인 미국의 D사는 최근 서울대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를 넘겨주거나 해외에 팔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또 서울대의 연구 성과들을 공개하면 ‘돈이 될 만한’ 기술에 대해선 자신들이 나서 특허를 내고 차후 발생하는 수익을 서울대와 배분하겠다고 제안했다. D사는 특허에 관한 인식이 부족하고 특허를 내고 싶어도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의 실정을 간파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 재단은 정부와 대학 당국에 대폭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교수들에게도 산학협력의 필요성을 적극 홍보해 외국 기업들과 부당한 조건으로 계약을 하지 않도록 힘쓰고 있다. 우리의 연구 성과는 바로 우리의 학문적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홍국선 서울대 산학협력재단 단장·재료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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