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종구]당명 싸움에 밀린 民生논의

  • 입력 2005년 2월 10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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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터 바꿉시다.” “알맹이부터 바꾼 뒤 논의합시다.”

설 연휴 직전 1박2일간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100여 명의 국회의원은 시종 당명 개정 문제로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이 같은 논쟁은 당명 개정 문제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연찬회의 다른 주요 주제였던 ‘민생’과 ‘경제’ 문제만 해도 총론적 주장은 쏟아졌지만, 정작 경제 살리기를 위해 정책을 놓고 머리를 싸매는 모습은 1박2일 동안 한 차례도 구경할 수 없었다. 심지어 연찬회 말미에 발표할 예정이던 ‘국민에게 드리는 글’도 당명 싸움에 밀려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이런 상황을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한나라당의 애인’이라고까지 표현했던 국민은 어떻게 느낄까. 상당수 의원들이 전하는 설 민심은 “한나라당 자체에 관심이 없는 마당에 당명 개정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 근저에는 “선거 때만 되면 당을 확 바꾸겠다고 공언했지만, 하나라도 바뀐 게 뭐가 있느냐”는 비아냥거림이 깔려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나라당은 때 이른 대권 경쟁에 빠져든 듯한 모습이다.

당내 ‘삼룡(三龍)’으로 불리는 박 대표와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 손학규(孫鶴圭) 경기지사 측은 서로 “대권 행보를 하고 있다”고 상대방을 겨냥하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이들 3인이 이미 파워게임을 시작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는 사이 오직 하나 변한 게 있다면, 다시 내리막으로 돌아선 당 지지율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열린우리당에 다시 추월당했다. 정부 여당이 새해부터 ‘경제 다걸기(올인)’를 표방한 게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늘 그렇듯이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스스로 뭘 해서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 ‘손님 실수’에 따라 바뀐다는 얘기가 새삼 확인된 셈이다. 여권이 “잔 펀치를 자주 맞아도 어차피 대선에선 이긴다”고 자신하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왜 ‘애인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지 그 진정한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윤종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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