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지호]‘국가의 제1임무’도 잊었나

  • 입력 2005년 2월 2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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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왜 존재하는가. 김동식 목사의 납북과 국군포로 한만택 씨의 강제송환을 접하며 터져 나오는 한숨 섞인 질문이다. 국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견해는 실로 다양하다. 무정부주의로부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러더’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국가상이 존재한다. 그런데 작은 정부를 추구하든 큰 정부를 외치든 무정부주의를 제외한 모든 주장을 관통하는 기본 명제가 하나 있다. 국가의 제1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에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다. ‘보이지 않는 손’을 신봉했던 애덤 스미스도 치안과 국방을 담당할 야경(夜警)국가를 인정했다. 이처럼 ‘국가 제1임무’론은 좌와 우,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대한민국 정부는 그 명제로부터 멀어져 갔다.

▼자국민 생명보호에 소홀▼

“일본 총리여, 납북자 문제 풀어주소서.” 작년 5월 22일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에게 한국의 납북자 가족단체는 이렇게 절규했다. 500명에 가까운 납북자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정부와 단 11명의 납북자가 있었던 일본 정부의 대응은 천양지차였다. 일본은 최우선 외교과제로 설정해 총력 대응한 반면 한국은 ‘특수 이산가족’이라는 해괴한 명칭을 만들어 이산가족 상봉 때 몇 명씩 끼워 넣는 ‘조용한 해결’을 시도했다. 심지어 통일부 장관 면담을 요청하는 납북자 가족들의 절박한 요구를 뿌리치는 단호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온 나라가 월드컵 축제 분위기에 빠져 있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안에서 비보(悲報)가 날아왔다.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북한 경비정의 선제사격으로 아군 고속정 한 척이 침몰하면서 윤영하 소령 등 아군 5명이 사망·실종되고 19명이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기막힌 것이었다. “그동안 정부기관에서 편지나 전화 한 통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유엔군 사령관이 두 차례 편지를 보내왔죠. 제 아들이 누구를 위해, 어느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거죠?”(황도현 중사 모친)

탈북 동포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헌법상 북한 동포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런데 주무부처 장관이라는 사람이 ‘기획 탈북’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며 김정일 비위나 맞추고 있다.

이 모든 사례는 대한민국 정부가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국가의 제1임무를 얼마나 우습게 알고 소홀히 다루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정부가 동원하는 명분이다. 북한에 대놓고 항의하지 않는 것은 민족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란다. 그러나 이는 사이비 민족공조다. 고통 받는 2000만 북한 민중과의 진정한 민족공조를 배반한 김정일 정권과의 사이비 민족공조가 대한민국의 기본을 흔들고 있다. 이렇듯 김정일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부로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 수 없다.

▼北정권 눈치보는 정부▼

미국은 지난 10년간 6·25전쟁 때 북한지역에서 사망한 미군 유해의 발굴과 본국 송환을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일본은 단호한 태도로 납치 문제를 해결했다. 미 상하원 의원 20명은 며칠 전 북한에 김동식 목사 사건 해결을 촉구했다. 김 목사가 미국 영주자라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김 목사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주무부처 책임자인 통일부 장관은 침묵하고 엉뚱한 외교통상부 장관이 나서서 중국을 통해 조용히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부는 좌파 정부인가 우파 정부인가, 아니면 ‘기본이 안 된 정부’인가?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서강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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