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제일銀매각’ 재경부는 상관없다고?

  • 입력 2005년 1월 11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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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뉴브리지캐피탈은 1999년 5000억 원을 투자해 5년여 만에 1조1500억 원의 차익을 냈음. A학점.”

“한국 정부는 17조6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12조3000억 원만 회수하고 5조3000억 원의 손실을 봄. F학점.”

10일 제일은행이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으로 넘어가면서 뉴브리지와 한국 정부가 받아든 성적표다. SCB는 이날 재정경제부와 예금보험공사 지분 51.44%를 포함해 제일은행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구조조정 의지 표명’이라는 목표 아래 제일은행을 서둘러 매각한 지 5년.

5조 원의 세금이 날아갔지만 담당 부처인 재경부 관료들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날 오후 SCB 발표를 전후해 재경부 내 관련 실국에 공적자금 회수 현황과 제일은행 매각에 대한 자체 평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담당자들은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거나 “다른 과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 같더라”는 등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한 재경부 고위 관료는 “왜 재경부를 끌어들이려 하느냐”는 황당한 말을 하기도 했다.

뉴브리지와 SCB의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재경부는 ‘잘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뉴브리지의 매각 조건대로 정부 지분을 모두 넘겨야 하는데도 말이다.

재경부는 결국 이날 SCB 기자회견 직전 예보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다른 은행들의 공적자금 평균 회수율은 최고 63.4%인데 제일은행은 70%가량 회수할 수 있어 회수율이 양호한 편”이라며 책임 회피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도자료를 통해 ‘외환위기 직후 제일은행을 청산했을 경우의 국민부담을 감안하면 5조 원은 큰 손해가 아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공적자금 손실의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다. 다만 제일은행 매각 과정에 어떤 잘못이 있었고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정책 당국의 설명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재경부 공무원들은 요즘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다’고 불평하지만 ‘책임을 떠넘기는 관료들은 권한을 가질 자격도 없다’는 점을 먼저 깨치기 바란다.

신치영 경제부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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