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너무나 다른 존슨과 실링

  • 입력 2005년 1월 4일 18시 17분


코멘트
“I'm sorry, I'm busy.”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조인간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I'll be back”이라고 한 마지막 대사와 분위기가 너무나 흡사했다. 지하 동굴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특유의 굵은 저음에 예의를 갖추면서도 거부의사가 담긴 짧고 명료한 대답. 아무리 무작정 덤벼들고 보는 기자라 해도 더 이상 매달리지 못하게 하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기자가 운 좋게 ‘괴짜’ 랜디 존슨과 마주친 것은 2001년 2월 삼성과 한화의 애리조나 캠프를 취재하러 갔을 때. 명목은 국내 구단의 해외전지훈련 취재였지만 속마음은 솔직히 딴 데 있었다. 그곳엔 당시 애리조나의 샛별 김병현과 시카고 컵스의 루키 최희섭이 있었고 이들을 만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역시 운 좋게(?) 김병현과의 서먹서먹한 인터뷰를 마친 직후였다. 몸에 딱 들러붙는 검은 가죽재킷으로 갈아입은 웬 거한이 트레이닝장에서 나와 자신의 스포츠카가 있는 주차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빅유닛이었다. 콩닥콩닥하는 가슴을 억누르고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돌아온 대답은 위에 밝힌 대로 문전박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존슨은 생면부지의 외국기자가 말을 거니 더욱 그랬겠지만 자국 언론을 상대로는 물론 동료들 사이에서도 워낙에 말을 아끼는 편. 이에 비하면 커트 실링은 어디를 가나 주위에 사람을 거느리고 화제를 뿌렸다. 지난해 초 보스턴에 이적해선 “밤비노의 저주는 더 이상 없다. 나는 보스턴에 우승컵을 안기기 위해 왔다”고 장담했고 현실로 이루었다. 포스트시즌에서의 발목 부상도 ‘핏빛 투혼’을 더욱 빛내게 한 중간과정에 불과했다.

애리조나 시절인 2001년 월드시리즈 공동 MVP를 수상했던 두 영웅. 서로 정반대 캐릭터를 가진 이들이 100년 라이벌 양키스와 보스턴 유니폼을 입고 벌일 ‘초대형 맞대결’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zangpab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